엉뚱한 질문도 괜찮아요?

by 한수

현재의 상황과 동떨어지거나 앞뒤가 안 맞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엉뚱하다고 합니다. 물론 대부분 그렇게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도 반발심에 그리 말하곤 하죠. 그래야 내 말이 ‘옳다고’ 여겨질 테니까요.


불편한 마음이 더 커지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라는 것을요. 신중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깝거나 옳은 방향일지도 모르거든요.


질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만큼 대단하죠. 왜 그럴까요?


‘질문하는 행위’는 다양한 의미를 갖습니다. 일단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거죠. 또한 내가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생각보다 높은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더 있습니다. 질문하는 행위는,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지’이며 그것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질문받는 입장에서 답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고, 때로는 어떤 이유로 인해 매우 귀찮을 수도 있지만, 질문이나 질문하는 사람을 폄훼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일정 범위를 벗어난 질문은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보통은 상대방을 당황시키거나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한 질문이지요. 예를 들어, 키가 작아 콤플렉스인 친구에게 “키가 몇이야?”라고 묻는다던가, 선생님에게 뜬금없이 “아이는 어떻게 생겨요?”라고 묻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 질문은 대화의 흐름을 깨고 분위기를 망칩니다. 질문받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함께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정신적・시간적 피해를 줍니다. 이런 걸 의도하는 사람은 없겠죠? 받는 사람은 생각보다 큰 타격을 입어요. 여담이지만, ‘모두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야’ 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잼이라 안 웃거나 못 웃는 건 제외하고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건강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올바른 질문을 독려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물어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질문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어요. 물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그런 질문은 따가운 눈총을 받곤 하지요. 하지만 가능한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합니다. 질문을 막으면 정체하고 퇴보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너무 낯설면 경계부터 하는 게 사람이거든요. 질문은 받는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부족’ 혹은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해요. 대답하는 척 교묘히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질문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넘기도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질문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행동입니다. 질문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진지한 엉뚱함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결과물’은 ‘다른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엉뚱함은 생각의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이 공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벽이 있습니다. ‘엉뚱한 사람’은 그 벽을 곧잘 넘습니다. 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 밖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보다 높은 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할 수 있는 경우의 수와 선택의 폭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이 클 테니까요.


이 세상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도 그저 작은 점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음표가 따라다니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잘 모르니 엉뚱한 질문처럼 들리는 것도 자연스럽고요.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들의 의문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격려해 주는 겁니다. 그 용기에 박수쳐 주어야 해요. 마음을 열고 함께 고민해 보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것에서조차 규칙을 깨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 흐린다’는 표현을 그렇게도 많이 사용하나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튀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흐름을 만들고 결국 세상을 바꾸었다는 것을 경험해 봤으면서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 가능성을 경험해 보았기에 더 무서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은 힘들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은 더욱 건강한 사회에 살 거라고 믿습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그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거든요.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점점 세지고 있으니까 조금은 믿고 기다려 봐도 좋겠습니다.


대신 여러분도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엉뚱해요? 불가능하다고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과거의 사람들이 상상이나 했을까요? 나는 학교에서 또 집에서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받아 마셨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을 팔면 어떨까?”라고 질문했다면 어리석은 소리라고 했거나 우스운 소리로만 치부했을 겁니다. 찾아보면 굉장히 흔한 일입니다. 잊었거나 잊은 척하는 것뿐입니다.


호기심을 가지세요. 진지하게 질문하세요. 변화는 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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