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에 성공했거나 실패했던 직∙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현재에 적응합니다. 혹은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쌓인 경험이 앞으로 일어날 다양한 일들에 대처할 힘이 되어 주는 겁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해 본 것과 해 보지 않은 것에는 크든 작든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경험을 맹신할 수는 없습니다.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거든요. 자기 경험에만 몰두하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해 봐서 다 안다고 말합니다. 나의 경험만 정답으로 여깁니다. 그중 몇몇은 실제 그렇게 믿습니다.
하지만 정답을 말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절대 정확한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예상할 뿐이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미래에 대해 호언장담하는 사람을 매우 경계하는 편입니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 중이고요.
어른들의 말이나 행동이 모두 정답은 아닙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여러 번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같은 결과를 얻었다 할지라도, 그다음 번 결과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어른들은 여러분보다 많은 일을 겪었을 거예요. 더 많이 고민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나름의 정리된 생각을 몇 가지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다 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어른들의 말에 무게감을 두는 편입니다. 세상은 종종 상대적인 경험의 양을 기준으로 판단하거든요. 경험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맞지만 ‘모든 경험’ 혹은 ‘많은 경험’이 반드시 수준을 높이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돋보이고자 하는 본능이 어른들의 그것을 조금 더 부추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주목 받기를 좋아하잖아요. 혼자 있어도 나름 평온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인 나 역시 그렇습니다. 칭찬과 보살핌이 부담스럽고 어색하지만,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이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뭔가 해냈다는 느낌을 받아요. 아주 작은 일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입꼬리가 올라가지요. 때로는 너무 티가 날까 싶어 주의를 딴 데로 돌린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짐으로써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는 방식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대로 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다른 이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목청을 높여 내 의견만 말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의 하나입니다. 상대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건 매우 기쁜 일이지만, 그 과정의 옳고 그름을 따져 봐야 합니다. 잘못하면 대화를 가장한 강요가 될 수도 있어요. 혹은 떼쓰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어떤 어른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이런저런 경험을 해 봤는데, 보아하니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그것과 조금 비슷해 보입니다. 그때의 상황과 결과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해 볼게요. 방법을 찾는 중인 것 같은데 한번 참고해 보겠어요?”
정답 찾기에 뛰어든 여러분에게 하나의 팁을 알려 주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뿐이에요. 그대로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위험 확률이 낮은 곳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니까요. 누구나 나만의 길을 개척하면서 삶을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선배인 어른들의 경험에서도 분명 얻을 것이 많을 거예요. 나보다 더 오래 더 깊게 고민하셨을 테니 다양한 방면에 대해 답해줄 겁니다. 의문이 생기면 물어보세요. 이해가 안 되면 다시 한번 물어보세요. 그것에 동의한다면 더 자세히 물어보세요. 그것을 토대로 새롭고 참신한 방법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믿지는 마세요. 어른들에게는(혹은, 그때는) 맞았지만 여러분에게는(혹은, 지금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맞는 이야기라면, 정말 세상에 정답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단순해졌겠지요. 물론 어른들 대부분은 진심일 겁니다. 하지만 진심이 진실은 아니지요.
십대 시절의 나는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았음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맹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에 따르는 나의 결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도 의도적으로 나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 옳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를 믿는 나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리 보면, 그야말로 고집불통이었지요.
하지만 더욱 다양한 환경에 놓이고 그만큼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변해갔습니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너무나 많았어요.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것도 셀 수 없을 정도였지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정반대의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그걸 뒤집는다는 건 지난날의 나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다만, 그것을 그냥 둘 수는 없었습니다. 틀렸다는 걸, 혹은 바뀌어야 한다는 걸 나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못하는 내가 늘 불편하게 느껴졌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이든(혹은, 누구이든) 맹목적인 반대와 수용은 피하세요. 객관적일 수 있는 적당한 지점에 서세요. 그것을 분해하고 재조합하기를 반복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것을, 여러분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