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을 긴장과 눈치로 살아서 ‘나”는 곧 내 ‘상황’이었다.
그 방 안에서 나는 갇혀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휴식이었다. 밖의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안에서의 6개월은 아주 고요하고 가만히 있었다. 시간의 허비, 제일 화려한 청춘의 낭비라고 생각했고 남들은 말했지만, 아니, 그 시간은 너무나 필요했던, 고요함 없이 혼돈 속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으로 선물받은 휴식이었다.
아침은 그냥 눈이 떠지는 시간이다.
일어나면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부터 확인해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안다.
강의시간이 지났나? 무기력하게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해 보고 이미 강의 중간에 일어난 거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배달앱으로 피자를 시켰다. 방은 살면서 역대급으로 엉망이고 이메일엔 출석경고메일이 날아왔지만 역시, 감흥 없다. 거울은 나를 보기 싫어 치워 버렸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는 모르겠는 좁은 1인 기숙사방에 갇혀 지내는 매일은 나의 6년 전의 매일이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무언가에 진심을 담아 열중해 보고 알아낸 적이 없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트라우마의 중심지였고 성인이 되고 내가 상처받은 공간과 상황에서 벗어나 대학교에 가서 4년간 나는 그 아무것에도 집중하거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
난 대학교를 pre-med로 캐나다에 진학했다. 의대를 가는 결정엔 아주 많은 이야기가 엉켜있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그 결정은 내가 여러 번의 해외이사와 전학을 하며 무시당하고 바보취급을 당한 내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의사 되면 아무도 날 멍청하다고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미술을 언제나 사랑했지만 “미술은 성적이 안 좋은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이란 (매우!)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 난 수그러들었고 남들이 그러든 말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용기도, 나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도 없었어서 내린 선택은 의대였다.
첫 대학교에 진학하고 난 1 년 후에 중퇴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만다.
대학에 다닌 첫 4개월간 난 10킬로가 찌고, 거의 아무도 안 만났으며, 거의 모든 수업은 F학점을 받기 직전까지 갔었다. 매일 매 순간 뭘 먹는지도 모르며 음식을 정신 놓고 먹었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겐 바쁘다며 방에 없는 척을 했고, 가족에게도 연락을 안 했다. 난 내가 이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 단 한 개도. 매주 몇 번씩 같은 악몽을 꿔서 실제로 오열하다 숨이 막혀 잠에서 깨어나도 난 “개꿈이네”하며 잊어버렸다 - 몇 번을. 절대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정말 몰랐다.
이 시간에 난 자기혐오로 찌들어있었다. 아니, 그 당시엔 그걸 자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 놓고 있어서 몰랐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 몇 년 동안 난 이 시간이 후회스럽고 창피했고 한심했다. 결국 제대로 배워보지도 않은 미술로 진로를 틀어버린 건 사실 꿈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그냥 내 부적응과 무능력에서 도망친건 아닐까? 나는 나조차 날 포기하고 버린 거였나?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이 시간이 내게 가장 중요한 첫 힐링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내 청소년기는 복합적이고 반복적인 트라우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아를 실현하려고 의식적으로 나를 알아가는 시기를 나는 현실을 도피하며 지냈다. 아주 말랑말랑한 시절 대부분을 fight or flight (극도의 외부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싸우거나, 도피하거나를 준비하는 생화학 반응) 상태에서 자란 내가 (-우리가-) 정말 괜찮았을까? 매 순간을 긴장과 눈치로 살아서 ‘나”는 곧 내 ‘상황’이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닌 게 당연하고. 겉보기엔 문제없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가 지금까지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어린이는 문제를 인정하면 받을 상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자각을 포기한다), 느끼지 않은 감정들은 부채처럼 밀리고 부풀어 성인이 된 나의 자아를 장악했다. (이건 며어어어엋년 후에야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이건 차차 풀겠다)
대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환경에 도달해서야, 그제야, 긴장이 풀렸던 것이다.
잠시 모든 걸 멈추었던 시간은 항상 남들 눈치를 살피고 상황을 살피며 계란껍데기 위를 걷는 듯 긴장속에서 살아온 내가 조금이라도 이젠 안전하다 느껴서 드디어 나에게 주는 늘어짐이었던걸.
여러분 중 매일이 무기력하고,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시간을 보내시는 분, 혹은 과거에 그런 시간을 가진 나를 지금까지도 자책하시는 분께 말하고 싶어요 - 그 시간은 치열하게 살아남아온 우리의 안정이자 몇 번 경험 못한 고요함이었을 테니 그 시간을 가진, 그리고 가지고 있는 나를 너무 채찍질하지 말아 주세요. 이제 겨우 풀어지는 걸 몰아서 한단건, 그만큼 쌓인 피로와 써버린 에너지가 누적된 거였을 테니, 내가 다시 일어서서 “나의 삶”을 살아갈 힘을 비축하는 걸 화내고 조급해하지 말아 주세요. 우린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왔고, 그 시간들이 얼마나 견디기 아팠는지 우리는 알잖아요.
이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한말, 그리고 당신이 당신에게 해줬으면 하는 말,
“지금까지 우리 많이 힘들었지.
여기까지 와준 네가 너무 장해. 포기하지 않아 준 네가 너무 대단해. 너무나 감사해.
전쟁통 중심에서, 마치 칼과 갑옷들 사이에서 나체로 쉼 없이 뛰어오고 상처받아온 거 같아.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있게 해 준 네가 너무 소중해.
처음으로 느끼는 적막과 쉼을 방해하지 않을게. 경멸하고 닦달하지 않을게. 충분히 쉬고, 너의 다친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우리 이번엔 우리가 원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보자.
푹 쉬어. 그리고 쉬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