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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Jul 11. 2023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의 (그리고 나의) 모든 가능성을 위해 이해해야 할 것.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놀랍도록 어린 내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왜 숙제 안 해왔니?라고 물었을 때 겁에 질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이를 보며 11살의 내가 떠올랐다. 


홍콩으로 이사가 언어가 서툴었던 나는 학교가 두려웠다.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엔 속이 울렁거렸고 몸에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40%밖에 이해 안 되는 수업을 온갖 눈치를 총동원해 해석하려고 애쓰다 보면 집에 가서 해야 할 숙제가 점점 날 옥좨왔다. 난 그 숙제를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안 해간 적이 많았다. 당연히 선생님께 혼났고, 두려움은 그럴수록 더욱더 커져, 학교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덩치가 크고 짙어졌다. 그럼 난 계속 도망쳤고 어느샌가 난 미루는 게 너무나 익숙한 아이가 되었다. 


게으름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믿는다. 무언갈 미루는 행동에 내재된 마음은 "나 이거 맞서기 무서워. 이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심판이 두려워"다.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느낄 자존감의 하락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국제학교에서 가르치는 난, 영어가 서툰 아이들이 이런 행동패턴이 많이 보이는 걸 안다. 특히 모국어로 배울 땐 상위권을 놓치지 않던 아이들이 더 그렇다. 나 역시 점수가 개판으로 나와도 상관 안 하는 아이였다면 아마 숙제를 하는 게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이미 배운 아이여서 더 실패하기 무서웠다. "성적을 잘 받을 때 제일 나에게 관심을 보인 아빠에게 외면당할까 두려운 마음", "성적 잘 받는게 제일 자랑스러운 자식"처럼 외부의 조건적인 사랑은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 두려움을 심는다. 그리고 도피를 가르친다. 적어도 점수가 아예 안 나오면, 처음부터 아예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고 나도) 내가 똑똑한지 안 한지, 가치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


교사가 된 지금, 아이들에게 난 말한다. 

내가 꼭 들었으면 했던 말.


ㅇㅇ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미루게 되는 거 일수도 있어. 

나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가지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처음부터 완벽히 무언갈 잘할 순 없단다.

네가 숙제를 하고, 연습을 하고, 틀리기도 하면서 점점 네가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도달하는 거야. 몇 번의 실패도 절대 너의 가치를 바꿀 수 없어. 하나 빼고 다 틀려도 좋으니 다음부턴 꼭 숙제를 해오길 바래. 그 점수로, 성적으로 널 평가하지 않을게.


그리고 참 다행히, 열에 아홉은 숙제를 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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