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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an 17. 2019

비웃음이 금지된 예능이라니,
<옥탑방의 문제아들> 리뷰

재밌고 착한 예능, KBS에게도 희망이 있다

  KBS에서 수요일 11시에 방영되고 있는 '옥탑방의 문제아들'.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은 이 예능을 본방사수하고 매일같이 돌려보는 '팬'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년 추석 즈음 나는 한국 예능의 전형적임에 질려있었고,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본지 꽤 오래된 상태였다. 추석 특집으로 나온 예능도 다 마찬가지였으므로 무표정한 얼굴로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게 됐고, 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최애(!) 예능을 만날 수 있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하는 출연진. 왼쪽부터 정형돈, 김용만, 송은이, 김숙, 민경훈. (출처 :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공홈)

  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각자 다른 예능에서 활약하는 동이미지가 많이 소비돼 ‘뻔한’ 예능인으로도 불릴 수 있는 이들이 나온다. 또한 '옥탑방에서 10개의 문제를 다 풀면 퇴근'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포맷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새롭고 특별하다. 여기에는 이 프로그램이 ‘재밌고 착한 예능’이라는 것, 그리고 KBS에서 볼 수 없었던 편집과 자막, 멤버들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을 얘기했을 때 ‘재밌는’과 ‘착한’은 쉬이 함께 할 수 있는 수식어가 아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놀리고, 괴롭히고, 속이고, 머쓱하게 만들어 재미를 유발하는 예능은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 아이들을 관찰하는 예능에서도 아이들을 놀리거나, 몰래카메라를 진행해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보편화되어있을 정도다. 이런 방식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가장 쉬운 길이라는 것을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가끔 비판받을지라도 계속 활용해왔다.

민경훈의 답을 비웃은 문세윤에게 프로그램의 규칙을 알려주는 출연진. (출처 :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그러나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이런 기조에서 벗어난다. 이 프로그램 안에는 ‘서로를 비웃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 오랜 시간 한 방에서 문제를 푸는 탓에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이 규칙 덕분에 출연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덕분에 기상천외하고 창의적인 답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재미를 만들어낸다. (물론 가끔 비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이 이에 대해 지적하고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것을 통해 규칙을 지키려는 모습이 계속 등장한다.)

라이벌로 꼽았떤 민경훈이 문제를 맞추자 아쉬워하는 김종민. (출처 :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또한 10개의 문제를 빨리 풀고 퇴근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출연자들은 필연적으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선택하게 되었다. 멤버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집단지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또한 기존의 예능과는 다른 특징으로, 경쟁 속에서 남을 이겨야만 했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김종민이 게스트로 출연했 때 다른 사람이 문제를 맞추자 혼자서만 아쉬워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체제와 규칙이 새로움의 기반이 된다면, 이를 더욱 확장시키는 것은 바로 편집과 자막이다. 필자가 이 예능을 즐겨본다고 했을 때 ‘KBS 예능이 재밌어?’라는 반응을 듣기도 할 정도로, ‘KBS 예능은 재미없다’는 인식이 꽤나 퍼져있는 상황이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뻔하디 뻔한 편집 방식과 자막이다.

 편집과 자막은 더 이상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를 이끌어가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신서유기>다. 시청자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편집 방식이나 ‘뻘하게 터지는’ 자막은 <신서유기>가 주는 재미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KBS 예능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 편집과 자막보다는 개인의 개인기나 애드립, 특징에 집중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고, 프로그램의 방영이 점차 장기화되면서 개인에만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움을 전달하지 못했다. KBS의 대표 예능인 <1박 2일 시즌 3>가 재미를 잃어간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조용해진 틈을 타 버즈의 노래를 틀고 개사를 한 자막을 띄운 화면. (출처 :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그러나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면 KBS의 희망이 보일 정도다. 편집과 자막에서 지금까지 KBS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퀴즈를 푸느라 조용해진 시간에 버즈의 노래를 뜬금없이 틀고 퀴즈를 푸는 상황에 맞춰 개사를 하기도 하고, 정답을 맞추기 위해 불도저같이 달려드는 김신영의 모습에 불도저로 자막을 밀어내는 형태로 자막을 쓰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새로움’을 더했고, 더 나아가 재미를 더했다.(가끔 과하고 유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 흠이다. 하지만 뻔한 것 보다 낫다고 생각.)

 그 외에도 멤버들간의 케미가 재미에 한 몫을 한다. 예능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주요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멤버들과의 유대를 쌓는 것이다. 멤버들이 친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멤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멤버들과 '친목'을 하는 기분이 들도록 한다. <무한도전>과 <1박 2일>, <런닝맨> 등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나 혼자 산다>나 <집사부일체> 등 이 이러하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멤버들끼리 크리스마스와 생일 선물을 주기도 하고 세뱃돈을 나눠주기도 하며, 심지어 찾아오는 게스트들도 간식거리나 화분 등 선물을 하나씩 들고 온다. 이 런 모습에서 아주 특징적인 것을 하나 더 꼽자면, 민경훈과 나머지 멤버들의 나이차이가 꽤 남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주 동등하게 대한다. 세뱃돈을 받는 상황이 되자 나이에 따라 다르게 받는 게 싫다는 민경훈의 말에, 가위바위보를 해서 5만원을 차지할 사람을 정한다거나, 송은이에게 그 아래 동생들이 세배를 하자 김용만도 같이 한다던가.

세뱃돈으로 5만원, 1만원, 5000원을 나눠 갖기 위한 가위바위보를 하는 출연진. (출처 : 옥탑방의 문제아들 캡처)

  KBS는 타 방송사와 다르게 공영방송이므로 예능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웃음만을 선택해선 안 된다. 하지만 예능의 특성상 재미가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어떻게 보면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KBS가 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좋은 예시가 바로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퀴즈 프로그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상식을 전달하고, 협력의 가치와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며, 동시에 웃음까지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연자들이 기존의 웃음코드에 익숙해져있는 만큼 이를 활용하는 측면이 어느 정도 있고, 제작진도 그럴 수 있는 ‘판’을 깔아주기도 한다. 이는 남녀관계 혹은 각 성별에 대한 문제가 나올 때 두드러지는데, 조금은 불쾌할 수 있는 ‘드립’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썸 탈 때 술자리에서 여자가 남자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문제에 ‘같이 귀가한다’, ‘귀가해달라고 한다’, ‘귀가할 의지가 없음을 밝힌다’와 같은 답변이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불편함은 대놓고 ‘여혐’ 유머를 남발하는 타 예능에 비하면 ‘참고 넘어가줄 만’하다.

  최근 나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예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냐는 것이다. ‘전쟁터’에 가까울 만큼 치열한 시간대에 들어가있기 때문인데, 최근 가장 뜨거운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스테디 셀러인 MBC <라디오 스타>가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다. 다행히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히 호평받고 있으며 전쟁터 속에서도 2~3%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 또한 재방송 시청률이 본방송 시청률과 비슷하게 3%가 나오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 예능에서 편안함과 재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으로서, 바람 아래 촛불과 같이 버티고 있는 이 예능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장수 프로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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