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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Feb 01. 2019

총체적 난국의 '빻음', <왜그래, 풍상씨> 리뷰

2019년에 이런 드라마가 존재할 수 있다니 정말 최악이다

(글의 특성상 <왜그래 풍상씨>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걸, 리뷰를 쓰겠다고 억지로 보지는 말자고. 그러나 이런 결심을 깨게 만든 것이 바로 KBS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다. 이 드라마의 내용에 대한 한 뉴스를 보고, 너무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보기 싫고 힘들더라도 이건 꼭 보고 리뷰를 써야겠다고 바로 생각이 들었다. 나를 화나게 만든 뉴스의 제목은 "'왜그래 풍상씨', 이시영 전남편에 맞고도 애틋 키스'유준상 황당'"이었다.

<왜그래 풍상씨> 포스터. (출처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3158735)

  제목을 보고 찾아본 드라마 내용은 더했다. 이시영이 맡은 이화상의 전남편은 술만 마시면 난폭해져서 이화상에게 폭력을 저지르지만, 이화상은 그를 옹호한다. 코피가 터질 정도로 맞았지만 '그냥 장난이었다'라고 얘기하고, 전남편과의 관계를 반대하는 오빠 이풍상을 뿌리치고 이화상은 전남편에 뛰어가 애틋하게 키스한다. 그를 답답해하는 이풍상에게 이화상은 "걔 나 때문에 별 달았어. 딴 놈한테서 나 구해주려다가 처음으로 별 달았다고."라고 말하며 전남편을 감싼다.

https://tv.naver.com/v/5223008

이화상과 전남편을 반대하는 이풍상, 그에 반기를 드는 이화상. (출처 : 네이버 TV)

  ... 진짜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화상이 대체 왜, 자신을 때리는 전남편과 계속 함께하려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드라마를 차근차근 뜯어봤더니 이유는 이랬다. 이화상을 온전히 '이화상' 자체로만 봐주는 사람이라서.

  하지만 이런 이유는 폭력 아래 아무 의미가 없다. 전남편이 이화상 때문에 전과자가 됐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유일한 사람이든 다 쓸모없다.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전남편도 자신이 술을 마시면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화상의 생각과 전남편이 이화상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두 사람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려는 듯 보인다.

  이화상이 겪는 가정폭력과 전남편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 또한 너무 우스꽝스럽다. 구슬픈 음악과 과장된 연기로 화상이 '꼴값을 떠는' 모습을 강조하려는 듯 보인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리도 가볍게 써 내려가는 것이 너무도 어이가 없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하 알함브라)이 여성 인물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https://brunch.co.kr/@hansung-culture/4) , 이 드라마에 비하면 <알함브라>는 애교 수준이다.

  솔직히 화가 너무 나서 뭐라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시영이 맡은 이화상의 이야기를 찾아보려다 보니 다른 내용들도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었다. 전부 다,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젠더적인 관점에서.

https://tv.naver.com/v/5075322

(출처 : 네이버 TV)

.... 이 영상을 보는 내내 내 표정은 썩어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장면들이 '빻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나처럼 불쾌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 참는다. 여적여부터 표독한 시어머니까지. 이 드라마는 '빻음'의 종합 선물 세트다.

  이 드라마를 쓴 문영남 작가의 전작들(<우리 갑순이>, <왕가네 식구들> 등)이 젠더 감수성이 아주아주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로맨스로 가장된 폭력'을 찾아내기 위해 실시된 드라마 모니터링에 참여했을 때, '로맨스로 가장된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우리 갑순이>의 한 장면이 쓰였을 정도니까.

  이런 명성(?)을 고려하더라도 이 드라마는 진짜 최악이다. 지금은 2019년이다. 드라마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섬세하지 못한 장면들에 대해 수도 없이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구닥다리 사고가 그대로 박혀있는 남자/여자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써먹는가. 여성들이 겪는 슬픈 현실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안 보이고, 그저 드라마의 장치(이화상을 더욱 '화상'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고 불우한 가정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로 가정폭력을 쓰는가.

  이 작품의 시청률이 9.5%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무섭게 한다. 혹시나 누군가 이 드라마를 보고 실제로 저럴 수 있다며 믿어버릴까 봐. 그리고 '가벼운' 방식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대하는 방식이 저도 모르게 스며들까 봐.

  변해야 한다. 문제의식없이 이런 내용을 써 내려가고 있는 문영남 작가도, 이 드라마를 내놓고 있는 '공영방송' KBS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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