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 Feb 06. 2019

고구마1kg에 미지근한 사이다 한 모금, <뺑반> 리뷰

뻔한 클리셰에 이해 불가능한 내용의 연속

(※글의 특성상, 영화 <뺑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뺑반> 공식 포스터.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뺑반>을 보고 왔다. 설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극한직업>은 이미 본 상태라 볼 영화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나쁜 평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딱히 볼 게 없으니, 그냥 보자. 하고 예매를 했는데... 그냥 보지 말 걸 그랬다.

 

  나는 이 평을 쓴 사람에게 올해의 작문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 이 기분을 영화 <뺑반>을 보는 내내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빨리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 영화는 예상보다 더 재미가 없으며, 보는 내내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기분이 나빠진 데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3번의 전환점, 서정채(이성민)의 죽음, 윤지현(염정아)의 배신, 서민재(류준열)와 정재철(조정석)의 마지막 반전이 주로 작용했다.

<뺑반>에 등장하는 서정채(이성민). (출처 : 다음 영화)

  일단 첫 번째부터 얘기하자면, 서정채는 선한 캐릭터의 정신적 지주와 마찬가지인 존재다. 그의 죽음은 등장인물들의 정재철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기 위한 장치로 작용하기 위해 등장하지만 정말 순도 100% '우연의 일치'로 발생한다. 왜 그가 하필이면 은시연(공효진)과 정재철(조정석)이 추격전을 벌이는 골목으로 바로 그때 진입을 한 것인가. 이 장면이 등장했을 때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이 어이가 없어 웃을 정도였다. 

<뺑반>에 등장하는 윤지현(염정아)과 은시연(공효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두 번째는 윤지현의 배신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 중 하나인데, 윤지현 또한 은시연이 믿고 따르던 캐릭터였으며 우리에게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정재철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고 윗 상사에게 맞아 피가 흐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에게 짠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정말 아무 복선도 없이 갑자기 윤지현과 정재철이 손을 잡는다. 믿었던 사람이 아무런 떡밥도 없는 상태로 뜬금없이 배신한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이 신기해하고 소름 돋는 것이 아니라 황당하고 기분이 나쁘게 된다.

  마지막은 서민재와 정재철의 반전이다. 극의 후반, 두 사람의 빗 속 혈투가 이어지는데, 그때 검사로부터 전화가 온다. 조정석을 잡기 위한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연락일 것이라 서민재도, 관객들도 생각하지만 아니다. 영화 초반에서 정재철을 배신하고 그의 죄를 고백했던 최 이사가 갑자기 자기가 잘못한 일이라며 정재철의 죄를 뒤집어쓰고 자백을 한 것이다. 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오던 고구마를 싹 내려가게 해 줄 사이다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 부분에서 갑자기 고구마를 더 먹이니 황당함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다행히(?) 고구마로만 끝나지 않는다. 서민재가 정재철에게 총을 갖다 대자, 정재철이 옆에 있던 드라이버(?)를 이용해 서민재를 찌른다. 서민재는 이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수갑을 채운 뒤, 뺑소니 및 경찰관 살해 시도 혐의로 체포한다고 말한다.

  여기가 분명히, 이 영화의 작가와 감독이 의도한 사이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이다는 미지근하기 그지없었고 심지어 한 모금에 불과할 뿐이었다. 정재철이 이전까지 저지른 범죄로 잡혀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민의 죽음에 대한 죗값도, 과거 그가 저질렀던 뺑소니에 대한 죗값도 치르지 않았다. 그가 이전까지 법의 위에서 안하무인으로 자기 마음대로 할 때를 기억하는 관객들은, 그가 교도소에게 들어간 것은 그저 '잠시' 들어간 것이며 어떤 수를 써서든 나올 것이다, 혹은 복수를 할 것이다는 예상을 하게 된다.(이 예상은 아니나 다를까, 극의 마지막에 여지를 두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확신이 된다. 그러나 극장에서 뛰쳐나가려던 관객들이 이 장면이 나오자 실제로 화를 냈다는 것을 덧붙인다.)

<뺑반>에 등장하는 정재철(조정석). (출처 : 다음 영화)

  물론 이 영화의 아쉬운 지점은 3가지 전환점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인물 설명이 없고 나오더라도 빠르게 지나가는 탓에,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영화를 봐야 한다. 카레이서인 정재철이 어쩌다가 법 위에서 모든 걸 후려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즉 악당이 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한 이유를 모른 채 관객들은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제대로 이해될 리가 없다. 

  게다가 뻔한 클리셰가 후두두두 쏟아지는데, 보고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앞에서 말한 서정채의 죽음이라든가,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지 마라', '보이는 것이 진실이다'라는 대사라든가. 

  그나마 이 영화에서 장점이 있다면 자동차 액션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 날 넷플릭스에서 '분노의 질주'를 봤다. 이 시리즈는 많은 속편이 나온, 한국 관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영화다. '분노의 질주'에서는 비행기에서 차가 떨어지고 낙하산으로 착지하며, 공중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자동차로 뛰어넘는데, 이 영화의 액션씬이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고 영화에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혹평만 하는 게 미안하고 안타까울 정도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로도 커버가 안 될 만큼 이 영화의 스토리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설프다.


한 줄 평. 

고구마 1kg에 미지근한 사이다 한 모금.


작가의 이전글 총체적 난국의 '빻음', <왜그래, 풍상씨>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