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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an 02. 2020

총체적 난국의 백두산, 최악은 배수지(최지영) 캐릭터

단언컨대, 최지영은 민폐 캐릭터이자 클리셰 전개 수단일 뿐

영화 백두산 포스터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3855)

(글의 특성상 영화 백두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좌석에서 대놓고 볼멘소리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볼멘소리보다는 불만에 좀 더 가까웠지만. ‘빨갱이는 하나도 안 나오냐,’는 말을 들으면서 백두산이 한편에서는 ‘친북’ ‘반미’ 영화라고 평가받는다는 기사 제목을 본 게 떠올랐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문제점은 ‘정치색’이 아니다.(필자가 보기엔 백두산이 폭발하면 일어날 여러 국내외적 상황을 아주 잘 다루고 있었다. 냉정할 만큼.) 클리셰 범벅에 뚝뚝 끊기는 내용, 어색한 편집 등 다양한 문제점이 엉망징창 와장창 하면서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은 배수지가 맡은 최지영 캐릭터다. 단언컨대, 최지영은 민폐 캐릭터이자 더 나아가 남성 중심의 클리셰를 전개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민폐 + 클리셰 전개 수단 = 최지영


영화 백두산에 나오는 배수지(최지영 역)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3855)

최지영의 등장부터 최악의 시작을 알렸는지도 모른다. 임신한 아이의 초음파 검사를 하는 자리에 함께 가기로 했던 조인창(하정우)은 그 사실을 잊었다가 깨닫고는 아내(최지영, 배수지)에게 전화를 건다. 이전과 이후에 등장하는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은 최지영이 남편의 직업적인 일(불발탄 제거 작전 등 현장에 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남편이 위험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인창이 전역하게 되는 데도 최지영의 생각이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신이 없어 괄호 안에 쓴다.) 불안과 걱정으로 인해 남편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방해하는 아내. 여기서부터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얼마나 엉망으로 최지영을 그릴지.

최지영은 만삭의 임산부로 그려진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러한 설정을 알고, 대충 이유를 예상했을 때 머릿속에는 ‘모성애의 강인함’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차라리 이런 이유였으면 나았으려나. 최지영이 임산부로 그려지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위해서다. 아버지로서의 역할, 성장은 영화 내내 조인창과 리준평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동시에 두 사람의 연결고리다. 조인창은 자신의 아이와 아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자처하며, 리준평도 마찬가지다.(리준평의 경우 자신의 아이 순옥을 위해.) 다시 말하자면, 최지영이 임산부여야 할 이유는 최지영의 개인 서사와는 상관이 없으며 철저히 '아버지'인 조인창을 위해서다. (감독은 최지영에게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을 넣었다지만 그럼 그런 장면을 좀 넣든가. 배 좀 감싼다고 그런 게 바로 느껴지길 원하는 건 너무 직무유기 아닐까.)

어이가 없게도, 이 희생이 있기 직전까지 최지영이 살아있어야 희생의 의미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영화의 초반에 최지영은 차에 갇힌 채 한강에 빠졌을 때 멀쩡히 차에서 빠져나와 수영을 해 인천항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만삭의 임산부인데 말이다(!) 심지어 차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1도 나오지 않는데 관객들은 기적적으로 탈출한 그의 모습을 그냥 아무런 앞뒤 내용 없이 봐야 한다.

영화 백두산에 나오는 마동석(강봉래 역)과 배수지(최지영 역)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3855)

만삭 임산부가 차에서 빠져나와 홀로 한강을 헤엄쳐 나온 뒤 인천항까지 도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당연하게도, 남성 캐릭터와 관련된 내용 전개를 위해서다. 한국의 현실로 인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강봉래 교수가 인천항에서 우연히 최지영을 만나게 되고, 그가 조대위의 아내이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게 된다. 조대위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강 교수의 죄책감과 동정심을 자극하고 그가 결국 한국에 남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민폐’ 캐릭터로서의 정점을 찍는 것은 최지영이 강봉래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있을 때 조대위와 전화연결을 할 때다. 9번 갱도에서 7번 갱도로 최종 목적지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아주아주 시급한 시간에, 최지영은 전화가 연결된 마이크를 붙잡고 조대위에게 화를 낸다. 강 교수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막기까지 하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는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한국(남자) 영화’의 여성 캐릭터 활용


화려한 캐스팅과 엄청난 예산을 들인 CG를 선보이고 있는 백두산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내용적 측면에 소홀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최지영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외에도 아주 아주 X284920 뻔한 한국영화의 클리셰들이 범벅되어있는데, 그러다 보니 남성 중심의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활용되던 방식도 그대로 가져오게 된 셈. 감독도 배수지의 설정에 대해 묻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한국에 여러 감독님들을 보면서 성장한 터라 이런 플롯과 클리셰가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거 같다'라고 답한 바 있다. 아니 그래도, 어떤 영화에선 임산부가 뺑소니 전담반을 맡아 팀원들을 인솔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굳이 꾸역꾸역 여성 캐릭터를 넣고, 거기다가 그를 임산부로 설정한다고 결정했을 때 조금의 고민은 했어야지. 안 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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