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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Mar 16. 2020

동양 판타지의 '극치', NCT127의 영웅

고정관념을 더욱 '고정'시키는 불편한 콘셉트

NCT 단체 사진. (2018년 기준 사진으로, 2019 WayV 데뷔로 인원이 추가되었지만 2019 이후 NCT 전체가 모인 사진이 없어 이로 대체한다.)

NCT. 이제는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이 아이돌은 SM의 현 막내 보이그룹이다. 어느덧 5년 차지만(NCT127, NCT Dream, NCT U 모두 2016년 데뷔.) 경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단언컨대, 체제 때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NCT라는 그룹 안에 3개의 유닛이 있고, 여러 유닛을 동시에 활동하는 멤버가 있다 보니 체제는 늘 NCT 입덕 장벽으로 꼽혀왔다.

여기다 기름을 부은 건 NCT의 노래다. SM이 발표하는 노래의 대중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이미 나왔고, 여러 그룹들 중에서도 NCT, 특히 NCT127의 노래는 처음 들었을 때 낯설다는 느낌을 제일 먼저 준다. 필자는 음알못이라 구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능력은 안되지만, 음알못도 알 수 있을 정도로(...) NCT127의 곡은 독특하다. 게다가 NCT의 세계관(꿈)을 기반으로 한 내용들이 곡에 담겨 있어서 가사가 난해할 때도 많다. 이건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단점이지만, 한편으로는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NCT127만이 소화할 수 있고, NCT127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곡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팬들 사이에서 보통 '네오함'(NCT의 앞글자 Neo에서 따온 말)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처음엔 낯설지만 네오함에 익숙해지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글에서 느꼈겠지만, 필자는 네오함에 익숙해진 엔시티즌이다.)

이번 정규 2집 타이틀곡 '영웅(Kick it)'도 이전 곡들과 마찬가지였다. 이 곡도 아주 아주 네오하다. 후렴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성, 랩과 보컬의 오묘한 결합, 그리고 트라우마를 깨고 영웅이 되자는 내용까지. 하지만 '영웅(Kick it)'은 네오함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낯섦을 넘어선 불편함이 있다. 그 이유는, 영웅의 콘셉트 때문이다.


서양에게 익숙한 동양의 이미지

이소룡, 중국 무술, 브릿지


NCT127의 영웅(Kick it) 뮤비 중 한 장면.

'영웅'의 콘셉트는 이소룡+중국 무술이다. 곡의 후렴에서 '브루스 리'(이소룡의 영어 이름)가 계속 반복해서 나온다. 또한 뮤직비디오에서 '이소룡'하면 떠오르는 쌍절곤이 여러 번 나오고 이소룡 특유의 모션(코를 손으로 쓰는 것)을 하는 멤버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안무에서도 이런 모션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 중국 무술을 상징하는 발차기나 손을 뻗는 행동(위 사진 참고)이 나온다. 이런 콘셉트이다 보니 공간적인 배경도 모두 '소림사' 같은 중국풍의 건물들이다. 뮤비 공개 전 선공개된 콘셉트 사진, 영웅 뮤직비디오, 앨범 사진 모두 그러했다.

NCT127의 영웅(Kick it) 뮤비 중 한 장면.

필자는 영웅의 콘셉트, 이소룡+중국 무술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싶다. 이번 앨범에 대한 공식 보도자료에서 밝힌 '영웅'의 메시지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겨내 '영웅'이 되자'는 것이다. '영웅' 가사에서 'I'm Bruce Lee', 'I'm gonna kick it like Bruce Lee'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소룡을 영웅으로 상정하고 그처럼 세상을 향해 'Kick'하겠다, 는 의미로 이소룡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과연 적절했을까? 이소룡이 생전에 강인함의 상징이었던 것은 알겠다. 그리고 그의 굴곡진 연기 인생을 봤을 때도 훌륭한 사람이 맞다. 하지만 NCT127의 노래를 소비할 이들 중 이 사실을 아는 인물들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필자도 잘 몰랐다. 이소룡을 알기에는 어린 세대에 속해있는지라, 그저 이소룡은 무술을 잘했던, 아주 유명했던 배우 정도로만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엄청 어린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NCT팬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소비층이 잘 모르는 건 둘째 치고, 중국 무술이나 이소룡 등이 서양에서 동양을 생각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리는 이미지라는 게 제일 큰 문제다. 특히 NCT 127이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팀도 아니고, 오히려 작년부터는 한국에서보다 해외(특히 미국)에서 활동한 시간이 더 길었던 팀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런 콘셉트는 부적절하다. 서양인들에게 고정관념을 확인사살시켜주는 거나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 고정관념이 사실인 것도 아니고, 굳이 과거의 것이 돼버린 걸 끌어오면서까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 판타지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중국에서 나온 그룹도 아닌, 한국 아이돌이?


NCT 127의 MARK 영웅(Kick it) 개인 티저 사진. (출처: NCT127 공식 페이스북 계정)


게다가 이번 NCT127의 한 멤버는 이번 활동에서 머리에 '브릿지'를 넣은 스타일로 뮤직비디오+무대에 나오고 있다. 브릿지야말로, 서양에서 생각하는 동양인의 고정관념 중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서양권(특히 미국)의 수많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동양인들은 머리에 '브릿지'를 넣고 나온다. 동양인이 늘 이렇게 표현되는 이유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라는 얘기도 있고 이민자들 중 미용 기술을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브릿지를 넣어줘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리 이유가 중요하진 않다. 중요한 건 동양인=브릿지라는 고정관념이 박혀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브릿지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서양에서 표현하는 동양인은 여전히 머리에 브릿지를 넣고 있다.


서양에서(특히 할리우드) 만들어진 영화, 애니메이션의 '동양인=브릿지' 공식을 보여주는 요약사진.


SM이 어떤 의도로 이번 콘셉트로 중국 무술, 이소룡을 내세우고 한 멤버에게 브릿지를 넣게 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고정관념을 그대로 보여줄 생각은 없었고, 어쩌다 보니 우연히 겹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의도였든 우연이었든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결과다. 해외에서 K-POP을 이끄는 그룹 중 하나가 이토록 뻔한, 동양 판타지를 그대로 수행했다는 건 부적절하고, 어떤 면에서는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 NCT가 한국의 전도사가 되어 중국에 국한되어있는 동양의 이미지와 브릿지와 같은 동양인의 고정관념을 깨는 그룹이어야만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더 '고정'시키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번 콘셉트는 NCT가 점차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가는 동시에 팬층도 이전 활동보다 더 탄탄해진 상황에서 아쉬운 콘셉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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