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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an 24. 2019

우리에겐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차별 표현에 사과한 정우성의 용기에 박수를

 얼마 전 한 기사를 봤다. 정우성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그는 <SKY캐슬>에 출연 중인 염정아에 대해 칭찬하며 "꽃은 역시 지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나는 불편했다. 왜 '여'배우는 언제나 '꽃'으로 비유되는가. '남'배우는 꽃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꽃'에 여성을 비유하는 것은 여자라면 하늘하늘하고 예쁜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는 편견이 배어 있다. 그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인터뷰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차별적 발언에 타당한 해명이 될 수 없으므로 그의 표현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으로 남았다.

 그러다 오늘, 정우성이 자신의 표현에 대해 사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과문은 정말 깔끔했다. 그는 소속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직접 사과했으며, 사과문은 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들이 사과를 할 때 해야 할 표현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차별적 발언'에 대한 사과문 중에 제일 인상 깊은 사과문이었다. (물론 그가 인권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연예인인 만큼 이런 발언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과문을 단독 게시글로 올렸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의 사과문 전문을 아래에 덧붙인다.

여러분이 같은 내용의 메세지를 보내주시니 공유될 것을 믿고
한 분의 메세지에 답글을 보냅니다.
우선 애정어린 우려가 담긴 지적에 깊은감사를 표합니다.
표현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받아드린 분이 불편하다면
그 표현은 지양되고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 되고 있는
차별적 표현이 어떤것들인지 생각해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가르침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여러분이 느끼신 불편한 감정에 깊은 유감과 사과의 마음 전합니다.


 이렇게 사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 사실 이가 어려워서는 안 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 특히 자신의 차별적인 사고나 말, 행동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한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 수도 없이 후회했다. 내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과 했던 말이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가 된 지금도 여전히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말에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배어 있는 차별적 사고가 얼마나 깊게 배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나와 같이 이런 순간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오랜 시간 동안 가부장적 사고와 차별적 사고에 갇혀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온 이상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빻음'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다. 동시에 내가 했던 생각과 발언이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를 상처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 와 같은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런 말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든다. '예민한 사람' '피해망상'이라는 굴레를 씌우기 때문이다.

 그다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약속하는 마음가짐이다. 사과를 했다고 모든 잘못이 씻겨나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돌이켜보고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당연히 달갑지 않다. 피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는 것만큼 더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번 경우를 통해 누군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인터뷰 기사를 보고도 그냥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넘겼다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했다. 정우성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이들이 정우성의 SNS를 통해 사과와 피드백을 요구했다. 정우성의 사과문은 이런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사과를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과를 해야 하는 이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차별적인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는. 이런 경우에는 그에게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차별받는 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그리고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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