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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Nov 03. 2021

과유불급, <개와 고양이의 시간> 리뷰

창작진의 과욕이 극을 훼손할 때가 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 재연은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억지로 보여주려다 자연스러움을 놓치다


이번 재연의 두드러지는 방향성은 ‘보여주기’다. 즉, 관객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변화가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장면의 삽입과 ‘슈뢰딩거의 개’ 넘버의 추가다.


극 속에서 랩터는 주인 아이비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명령을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기다릴 수도 없다. 아이비의 집 안으로 들어가야만 아이비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랩터의 상황을 담은 넘버가 ‘슈뢰딩거의 개’다.


넘버를 추가해 랩터의 서사를 강화하려고 했던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연출은 랩터의 상황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유사하다는 걸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 공연 중간에 매우 뜬금없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언급하는 장면을 삽입했다. 갑자기 스크린에 슈뢰딩거의 고양이- 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상자에 갇힌 고양이 그림이 등장하며, 내레이션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물음표를 머릿속에 가득 띄우게 된다. 게다가 그걸 보고 있는 플루토의 반응도 너무 어색하다. 억지로 끼워 넣었으니 거기 서있는 플루토가 할 수 있는 반응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장면의 추가가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연의 주제 전달이나 내용 이해에 필수적인 장면이라면 환영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 장면은 필수적이지 않다. ‘슈뢰딩거의 개’ 넘버 내용도 매우 친절하기 때문에, (랩터가 처한 상황을 풀어서 잘 설명한다) 위 장면은 군더더기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관람을 망치고 있으니, 이는 더더욱이나 과욕의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과욕의 결과, 영상과 안무



이번 <개와 고양이의 시간> 재연 연출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과욕의 결과’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공연을 보는 내내 타 극의 대사인, ‘난 이것도 할 줄 알아요, 난 이것도 할 수 있고요’가 바로 머릿속에 떠올랐달까.


재연에서는 영상이 적극적으로 쓰인다. 특히 플루토의 집사 참치를 표현할 때 참치의 실루엣 영상이 자주 쓰이는데, 이가 매우 어색하게 느껴진다. 실루엣은 실루엣에 불과하다. 사람의 목소리를 입힌다고 해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참치의 실루엣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누워 자고, 플루토를 쓰다듬는다.


게다가 영상에서 갑자기 참치가 춤을 춘다(!) 물론 실제로 참치가 춤을 추는 건 아니고, 참치가 일상생활을 보내는 모습이 플루토에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관객들에겐 참치가 춤을 추는 모습만 보인다.


사실 이번 재연에서는 ‘춤’의 활용이 강화되었다. 참치가 춤을 추는 것에 더해, 플루토와 랩터가 춤을 추는 장면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춤이 나오는 장면이 또(!) 뜬금이 없다. 초반,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넘버가 대표적이다. 대사를 치다가, 우뚝 멈춰 서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춤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쇼뮤지컬이 아니라면, 서사에 자연스럽게 춤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특히 관객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중소극장 공연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다면 춤을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난다. 이런 경향성이 <개와 고양이의 시간> 재연에서 매우 두드러 진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 초연은 분명 수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조그마한 세트 같은 걸 돌아다니는 연출을 통해 동물의 시선을 표현하려 한 점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 하나에만 기댄 측면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연출이 지나치게 텅 비어있었달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진열하듯이 눈에 보여주려 하는 연출도 좋지 않다. 공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망치고, 관객의 자연스러운 관람을 망친다. 모든 건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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