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간의 연뮤덕생활을 하면서 필자가 봤던 극 중에 가장 불친절한 극을 꼽으라면 뮤지컬 <Trace U>를 고를 것이다. 그런데, 5년 만에 만난 <Trace U>는 더욱, 불친절해진 채 돌아왔다.
(※뮤지컬 <Trace U>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처 : 뮤지컬 트레이스 유 공식 트위터 계정)
흔들려버린 기본적 서사
본하가 자신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본하와 우빈은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상태다. 우빈은 본하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고 본하를 설득해 ‘노래를 부르게’(=의사에게 고백하게) 만든다. 그런데 사실, 우빈과 본하는 한 사람의 두 인격이다.
<Trace U>의 기본적인 골격은 위와 같다. 이미 충분히 불친절했던 이전 시즌에도 이 골격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이 골격마저 흔들린다. 본하가 만난 그 사람은 본하의 어머니가 맞았을까? 본하는 본하의 어머니를 죽였나? 본하와 우빈이 정신병원에 갇혀있나? 우빈은 본하와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맞나? ….
이런 기본적인 서사마저 흔들리게 된 이유는 연출의 변화와 노래의 삽입 때문이다. 특히 노래의 삽입이 주요했는데, 본하에게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이 ‘대사’가 아니라 ‘노래’로 전달된다. 슬프게도 한국의 공연장의 음질은 그다지 좋지 않다. 관객들에게 반전! 을 전해주고, 서사의 전환점으로 매우 중요하게 쓰여야 할 부분에서 전달력이 좋지 않은 노래가 쓰이니 관객들은 우빈과 본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파악할 길이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기본적 서사를 날려버린 건 연출의 의도였던 듯하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여러 비판이 이어지자 김달중 연출은 트윗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사건보다는 인물의 정서에 집중하고 공간에 집중하여 클럽 공연을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을 시작할 때 가려고 했던 지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뮤지컬’을 보러 온다고 할 때 사람들이 기대한 건, ‘이야기’가 있는 공연일 것이다. 클럽 공연을 보러 싶다면 뮤지컬을 굳이 왜 보러 가나. 직접 클럽에 가지.
(출처 : 뮤지컬 트레이스 유 공식 트위터 계정)
첫 관람 관객은 이해할 수 없는 공연
기본적 서사가 날아갔을 때 문제점은 첫 관람 관객들이 이 공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이해하는 공연은 필자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의 ‘Trace U’는 이전 공연의 내용을 찾아보고 스터디를 열심히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되어버렸다. 혹은 필자처럼 이미 여러 차례 <Trace U>를 관람한 적이 있거나.
연뮤계에서 두 번 이상 관람하는 관객이 ‘평범해졌다지만’, 공연의 기본값은 첫 관람 관객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첫 관람 관객이 한 번의 관람을 위해 쓰는 돈이 얼만데.
뮤지컬 <Trace U>의 매력은 불친절함이었다. 서사를 꽁꽁 숨기고 있다고 공연 중, 후반쯤 우수수 쏟아내며 반전에 허덕일 때의 재미를 잊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난 뒤 앞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복선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던 그 순간 또한 짜릿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사를 숨긴 게 아니라 그냥 없애버렸다.
불친절함이 매력이 되려면 ‘적당한’ 수준을 지켜야 한다. 이번 <Trace U>는 안타깝게도, 선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