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포스터(출처 : http://mticket.interpark.com/Goods/GoodsBridge/GoodsBridge?GoodsCode=21004304)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왔다. 잠시 고백하자면, 이 제작사를 보이콧한 지 오래지만 최애 아이돌의 첫 뮤지컬 데뷔+막공이라는 것이 나의 보이콧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회개와 반성 중이다.)(...)
이 제작사의 작품을 보러 가지 않는 건 계속될 것이다. 이전의 보이콧을 지속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여성 2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서사적으로 너무나 낡았기 때문이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성은 질투 때문에, 남성은 권력 때문에?
이 작품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몰락시키려는 인물이 두 명 나온다. '마그리드'와 '오를레앙' 백작. 두 사람의 이유는 다르다. 마그리드는 자기와 달리 행복한 마리의 모습을 보고, 오를레앙은 마리를 이용해 루이 16세를 끌어내리려고. 정말 너무 '뻔한' 공식이지 않은가. 여자는 질투 때문에, 남자는 권력욕 때문에 누군가를 몰락시키려 한다는 이 구시대적인 발상이 나를 한숨짓게 만들었다. 최근 이런 발상을 뒤집으려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심지어 마그리드는 시민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나온다. 그런 지도자가 혁명을 주도하는 이유가 '마리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해서'라니.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고, 전 세계에 자유와 혁명의 사상을 일으킨 중대한 사건을 겨우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 사진(출처 : http://m.playdb.co.kr/MobileMagazine/ListicleDetail?magazineno=5911&subcategory)
뜬금없는 설정, 주제를 망치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 안내 방송에서 '이 공연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라고 이야기한다. 포스터에도 떡하니 적혀있다. 이 공연은 질문에 대한 답을 마그리드를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1막과 2막 모두 설정이 주제 전달을 망친다.
안내방송에서 주입한 것과 달리 1막에서는 사실상 그런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1막에서는 화려한 삶을 사는 마리와 가난한 삶을 사는 마그리드를 대비해서 보여주는데, 이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듯... 도 하다. 그러나 갑자기 마그리드가 마리를 '질투'해서 혁명을 이끈다는 이상한 설정으로 우리의 고민을 허무하게 만든다.
마리의 몰락으로 내용이 진지해지는 2막. 여기서는 생각할 만한 여지가 많아진다. 마리를 몰락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시민들을 보면서, 그리고 마리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면서 마그리드는(그리고 관객들은)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갑자기 마그리드가 마리와 배다른 자매라는 설정이 난입(...)하면서 이 공연의 서사는 엉망진창 와장창이 된다. 1막에서 딱히 복선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설정의 등장으로 마그리드가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가 마리의 삶이나 혁명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이 아닌 '배 다른 자매'라서 그런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과 여성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가볍고 얕게 이를 다루고 있다. 게다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아무리 멋있는 주제를 말하려 한들 구시대적 발상과 낡디 낡은 설정들에 머물러있다면 현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와닿을 리 없다. 문화계에 변화가 찾아온지도 한참이다. 이제 대형 뮤지컬에도 변화가 찾아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