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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 데스트랩 리뷰 (3)

"연극은 어떤 멍청한 작가가 쓰기 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by 한성

(※스포일러 주의!)


<데스트랩>을 두 번째 보면서 생각했던 것 중에, 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했던 따로 있었다. 바로, 연극 <데스트랩>의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을 격한다는 것. 그리고, 현실과 연극 <데스트랩> 속 세상의 경계선이 흐려진다는 것.


"<데스트랩>, 2막짜리 스릴러, 등장인물은 다섯."

... 근데 우리, 지금 <데스트랩> 보고 있지 않나?


1막에서 클리포드가 시드니에게 보낸 대본의 제목은 <데스트랩>이다. 2막짜리 스릴러, 등장인물은 5명. 어라, 어딘가 익숙하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데스트랩>과 체 구성이 똑같다.

2막에서 클리포드가 쓰고 있는 연극의 제목도 <데스트랩>이다. 배경은 하나, 등장인물은 다섯. 여기선 내용이 본격적으로 소개가 되는데, 1막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다. 아. 마이라를 죽이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것만 빼고.

이때쯤부터 관객들은 뭔가 싸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물론 사람에 따라 더 빨리 의심을 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근데 이쯤이면 대부분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연극이, 클리포드가 쓴 연극인가? 런 의문에 확신의 도장을 찍는 순간이 등장한다. 마이라를 죽인 것이 연극화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드니에게 클리포드가 마이라가 사실상 우리의 관객이 아니었냐고 말한다. 그리고, 리포드가 우리를 한번 쫙 훑어보는 그 순간! 아, 우리가 클리포드의 연극 <데스트랩>이 완성된 이후에 보게 된 관객이구나. 깨달을 수 있다.


클리포드가 창조한 세상,

그 안의 관객들


이제, 나의 세상과 연극 <데스트랩>의 세상은 연결된다. 그전까지 나는 그냥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걸 바라보는 관객 1이었다면, 2막에 저 내용이 밝혀진 이후에 나는 클리포드가 쓴 작품을 보러 온 관객 1이 된다.

그런데, 연극은 작가가 쓰기 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드니의 대사이기도 한 이 말은 너무나 맞는 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연극 속 인물과 대사와 배경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이다. 작가가 없다면? 나머지 것들도 다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스트랩>의 작가는 클리포드니까, 클리포드가 없으면? 시드니도 헬가도 포터도 마이라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없다. 그리고,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인 나도.

개인적으로 여기서 소름이 쫙! 돋았다. 원작자 진짜 천재다, 계속 생각할 정도로.

연극 <데스트랩> 컨셉영상 캡처. 클리포드 앤더슨역의 송유택,기세중. (출처 : 주식회사 랑 유튜브 공식 계정)

요약하자면, <데스트랩>은 관객들에게 연극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내가 본 연극이 관객석에서 볼 때는 실제 인물들의 처절한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왜냐, 작가가 대본을 쓰지 않으면, 인물이 존재하지 않고 그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인물과 세상에 책임이 있. 어떻게 보면, 창조자이고 피조물이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장치들로 관객들을 훨씬 더 몰입하게 만든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연극에서 관객은 아주 중요하다.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효과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데스트랩>을 예로 들자면, 1막에서는 <데스트랩>의 텍스트 내용이자 시드니와 클리포드가 꾸민 연극이 무대 위 마이라(관객)에게 가졌던 효과가 마이라의 심장마비였다. 동시에 무대 밖 관객들도 <데스트랩>의 텍스트 내용 안 에서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통해 관객석에서 튀어 오르게 되었다.

게다가 두 연극(무대 위 시드니와 클리포드의 연극과 관객들이 보는 <데스트랩>)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가 같기 때문에, 관객들이 <데스트랩> 자체를 훨씬 더 이입해서 볼 수 있다. 관객들이 때론 마이라에게 몰입해서 보기도 하고, 연극과 실제 세상을 구별하는 것에 모호함을 느끼면서 아예 그 세상 안에 들어가서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에 이 공연은 한 번의 반전을 더 준다. 아까 찍었던 확신의 도장을 지워야 하는 순간이다. 클리포드와 시드니가 구상한 연극 <데스트랩>을 보고 있는 줄 알았지만, 이가 아니다. 이걸 보여주는 건 바로 2막의 마지막, 헬가와 포터의 대화다.

연극 <데스트랩> 헬가 텐 도프(김지혜), 포터 밀그림(선한국) 사진 (출처 : 주식회사 랑 트위터 공식 계정)

헬가의 대사, '이건 내 아이디어야!"

<톰 소여의 보험>을 쓰려했던 포터


헬가는 모든 걸 예언하는 인물인데, 마지막에 포터와 싸우면서, "이건 내 아이디어야!"라고 한다. 사건, 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사건이 아니라 아이디어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쯤 두 사람이 이 연극 자체를 두고 싸운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연극을 고안한 사람이 클리포드가 맞나? 헬가가 아닐까? 리고, 연극화한 사람은 희곡작가를 늘 꿈꿨던 포터가 아닐까!(사실 중간에 굉장히 뜬금없이 포터가 자기도 늘 희곡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이야길 한다. 그건 아마 이걸 위한 큰 그림이었을지도.)

생각해보면, 클리포드가 구상했던(+ 시드니가 도왔던) <데스트랩>은 2막에서 형사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2막은 클리포드와 시드니의 싸움과 죽음이 그려지고, 형사는 나오지 않고 헬가와 포터가 나온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건 클리포드가 쓴 2막이 아닌 것이다.

이 공연이 그저 헬가의 예언의 나열이자 이미지로 떠오른 것을 충실하게 잘 연극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우리는 원작자는 새하얗게 잊고, 진짜로 공연 속 인물이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이 현실과 무대 사이의 장벽을 허문, 짜릿한 작품인 증거다.

이 부분은 처음 봤을 땐 반전을 소화하느라 제대로 자세히 고려하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연극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연극을 향유하는 관객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좋아한다. 그러니 데스트랩이 좋았을 수밖에. 혹시 이런 취향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면, 여러분, 데스트랩 보세요... 재밌어요... 꼭, 두 번 이상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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