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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해진 '사랑', <풍월주> 리뷰

by 한성

2012년 초연을 올린 이후 10년째 꾸준히 대학로 무대에 올라오고 있는 뮤지컬 <풍월주>.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공연의 수명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뮤지컬 <풍월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처 : 주식회사 랑 공식 트위터 계정)

여‘왕’이면 뭐해, 사랑에 목매는 것을


<풍월주>의 가장 인상적인 설정 중 하나는 남자 기생과 여왕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여자 기생과 남자 왕의 이야기를 주로 접해왔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신선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심지어 2021년인 지금에도 그렇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신선하지 않다. 여자 캐릭터가 왕이라는 위치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에 목맨다. 자신 곁을 떠나려는 이를 붙잡기 위해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 빈다. (심지어 필자가 보러 간 날에는 여왕이 이마를 바닥에다 대기까지 했다!) 물론 여자가 사랑에 목을 맬 수도 있다. 이가 진부해졌을 뿐.


(출처 : 주식회사 랑 공식 트위터 계정)

진부해져 버린 '사랑'이라는 설정


사실 <풍월주>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사랑’이다. 담이는 자신 때문에 궁으로 떠나지 않겠다는 열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한다. 그의 희생은 열이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열이와 담이의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저 두 사람 사이가 사랑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사랑은 없어라고 생각이 들었으므로(…) 사랑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 또한 이제는 진부해져 버렸다. 이에 더해, 사랑한다는 이유로 죽음을, 희생을 선택한 담이를 관객들이 쉬이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수많은 극에서 복잡다단한 설정들이 교차되어 인물의 결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풍월주>에서는 오로지 ‘사랑’ 뿐이다.


이제 <풍월주>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로 남은 건 배우들의 열연 하나다.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후의 후회까지. <풍월주>는 배우들의 깊은 감정연기가 필요한 작품이다. 짧은 시간, 다양하고 길게 주어지지 않은 서사에서 깊은 감정을 표현해내는 배우들을 보며 관객들은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배우들에게 기댈 수만은 없다. 작품 자체의 생명력이 없다면, 배우들이 아무리 열연을 해도 작품이 더 지속되기는 어렵다. <풍월주>가 지속 가능하려면 서사의 보완 혹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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