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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이너뷰Point of View May 17. 2020

헌법의 정당, 현실의 정당

인지부조화 앞에 당혹해하며


#1

자신의 의사에 따라 국가가 움직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영리하게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뭉친다. 선거 때에는 자신들의 후보자를 밀어 당선시킨다. 선거가 없을 때에는 단합된 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고 통제한다. 이것이 헌법이 생각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정당이 국민과 국가 사이의 중개체라는 것에 대하여 헌법학에서는 이견이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 헌법학 연구에서는 단 하나의 이견도 찾아보지 못했다.


#2

우연하게도 인기를 얻은 어떤 사람이 있다. 주변에서 정치지도자가 되어 줄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못 이기는 척하고 앞에 나선다. 측근과 멘토를 확보한다.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어느 날 커다란 강당 또는 체육관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전에 보지 못했던 깃발을 휘두른다. 그리고 정당이 된다. 당원들은 정당의 오너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열정을 마친다. 거기에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모든 헌법은 불완전하다. 그런데 불완전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헌법과 민주주의 현실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거나 정반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헌법의 정당 그리고 현실의 정당 사이의 불일치이다. 헌법은 '당원'의 정당인데 현실은 '오너'의 정당이다.


최근 제1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소동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진지한 논의도 합의과정도 없이, 어떤 노인장에게 맡기느냐 마느냐 설왕설래하고 있다. 백만 명이 넘는 당원들의 조직인 정당의 운명을 말이다. 분명히 '오너'의 정당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이다.


헌법을 닮은 모습으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할까? 헌법과 현실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지면 그때에는 헌법을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대한민국헌법'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마치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수준의 의문이다. 인지 부조화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제1조에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독재를 수십 년 했던 것이 이 나라다. 헌법과 현실의 거리를 견주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정반합'의 원리가 있지 않은가.


다만 헌법학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 지나치게 고립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 따돌림을 당해 놓고 본인이 모두를 따돌렸다며 정신승리하는 불쌍한 괴짜처럼 말이다. 헌법학이 조금 더 부지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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