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베네딕트 '벤' 에반스 Benedict Evans는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VC인 안드레센 호로위츠 (Andreessen Horowitz, 이하 a16z)의 애널리스트이다. a16z는 포브스의 Tech’s Top Investor 10위를 차지할 만큼 명망 있는 테크계의 투자자이다.
에반스는 매해 테크 시장의 거시적인 트렌드를 발표하는데, 올해인 2020년에는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서(Standing on the Shoulders of the Giants)>라는 제목으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하였다. 40억 명이 스마트폰을 가진 현재, 모든 사람들이 연결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점점 더 규제가 강화되는 테크 시장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그가 그린 미래의 모습을 번역해보았다.
(출처 : https://www.ben-evans.com/presentations)
2019년 기준 미국의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5,000억 달러 이상이다. 이커머스는 우리가 소비하는 제품의 품목을 확장시켰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Online-Only 전략을 선택하거나, 최소 Online-First 전략을 채택 중이다. 이커머스의 대표 강자인 아마존의 영업이익은 매해 30% 증가했으며,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미디어 회사들도 이커머스에 뛰어들고 있다.
이커머스를 위한 서비스 시장도 성장하였다. 아마존은 AWS처럼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늘리고 있으며, 이는 아마존의 총 영업이익의 1/3을 차지한다. 아마존의 검색 광고 이익 역시 100억 달러에 달한다. 부킹닷컴과 익스페디아는 구글 광고에 100억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매장에서 홍보를 할 수 있는 기존 오프라인 커머스와 달리, 이커머스는 마땅한 홍보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카일리 제너의 메이크업 브랜드처럼 인플루언서의 사업은 예외겠다)
이커머스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다 보니, 테크 업체인지, 그냥 웹사이트가 있는 회사인지 구분이 어렵다. 이커머스는 이제 차별화가 아니라, 뒤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최근 위태로운 IPO를 진행한 온라인 매트리스 업체 캐스퍼(Casper)가 그렇다. 매트리스를 온라인에서 구매한다는 것은 신선했지만 유사 업체들이 늘어난 지금,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매한다’는 사실은 더이상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리테일은 계속 새로운 형태를 가져왔다. 백화점에서, 창고형 매장에서, 이제는 이커머스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렇다고 리테일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뉘는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미국의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Nordstrom)의 온라인 매출의 1/3은 매장 방문을 동원한다. 소비자를 접하는 통로가 많아진 만큼, 기업들은 옴니채널 전략에 더욱 힘써야 한다.
미국의 TV 유료 구독률은 2014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유튜브가 런칭한 2004년 이후 꼭 10년 만의 일이다. 미국의 TV 송신료가 10년 전에 비해 20% 감소한 반면, 넷플릭스의 매출은 2배 이상 증가하였다. TV를 더이상 보지 않는 현상을 지칭하는 코드커팅(Cord Cutting)은 이커머스로의 전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TV를 보는 10대의 비율은 2016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했다. 유튜브를 보는 비율은? 50% 이상 증가했다. 라이브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의 월 시청 시간은 2019년 3분기에 10억 시간을 돌파했다. 이는 영국 BBC 규모와 유사하다.
이에 시청자의 스크린 타임을 점유하기 위해 콘텐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미국의 콘텐츠 관련 비용의 1/3은 기존 방송국이 아닌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등 스트리밍 업체에서 사용했다. 미국 기업이지만 넷플릭스 시청자의 절반 이상은 해외 시청자들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영국의 최대 TV 채널이며, 유튜브는 이보다도 더 규모가 크다.
스트리밍 업체들은 기존 시장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시청자들은 여러 매장을 둘러볼 수 있는 백화점이나 여러 채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TV 대신, 한 채널에서 모든 것을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아마존과 넷플릭스를 선택한 것이다.
에반스는 시장 확장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수직적 통합으로, 고객의 경험을 깊이 다루는 것이다. 이는 풀 스택 모델(Full Stack Model)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는 숙소뿐만 아니라 여행지에서의 투어 등 여행 경험 전반을 다룬다. 그저 숙소 예약만 도와주는 부킹닷컴 등과 특성이 다르다.
또 다른 하나는 수평적 확장이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 모델을 다른 시장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에너지 업체를 위해 온디맨드 인력을 제공하는 업체인 리그업(Rigup), 어르신을 위한 방문 도우미 플랫폼인 아너(Honor) 등이 그렇다.
문서 전반에서 에반스는 이 질문을 던진다 : 이렇게 디지털 전환을 통해 수평적으로 확장한 기업들을 우리는 테크 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이는 그저 새로운 채널을 가진 회사일 뿐인가?
Is that a ‘tech’ company?
Or is it a company with a website?
테크 업계는 PC,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큰 변화를 15년마다 겪어왔다. 그동안 기술은 일부 계층만을 위한 특권이었지만, 이제 미국 10대 중 83%가 아이폰을 소유하고 있으며 2017년 기준으로 40%의 미국인은 온라인에서 연인을 찾는다. 스마트폰은 이미 전세계 40억 인구를 연결시켰는데, 다음 변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AR/VR, IoT, 5G, 블록체인, 클라우드 서비스 등 새로운 변화는 많이 생겼다. 그러나 이 중에서 모든 걸 변화시킬 변화(the change)는 무엇인가? 2020년의 테크 시장에서는 많은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에반스는 그 중 규제와 정책을 꼽았다.
글로벌 기업 10위 중 7개는 테크 기업이다. 점점 거대해지는 테크 기업의 영향력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은 검색, 소셜 서비스, 온라인 광고뿐만 아니라 전체 광고 시장에서 독과점을 차지한다. 에반스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정의한다 : 1) 테크 기업이 타 기업에 독과점 지위를 악용하는 경우, 2) 테크 기업이 사용자의 정보를 악용하는 경우, 3) 딥페이크나 혐오발언 등 사용자가 테크 기업을 악용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독과점의 문제는 독과점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시장’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아마존은 미국 이커머스 시장의 35%를 차지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포함한 전체 리테일 시장에서 보면 3.5%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10%대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과반수이며, iOS 앱스토어에서는 (당연하게도) 100%라고 할 수 있다. 규제 기관이 내린 시장의 정의에 따라 독과점법 위반 여부가 정해지는 것이다.
한 기업 내에서도 다양한 서비스에 따라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구글 내에는 유튜브, 안드로이드, 지메일, 광고 사업이 나뉜다. 페이스북 역시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의 모회사이다. 아마존도 AWS로 클라우드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쪼개놓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유튜브를 구글에서 떼어놓는다고 해도, 유튜브와 경쟁할, 유튜브를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독과점법은 2) 테크 기업이 사용자의 정보를 탈취하는 경우, 3) 딥페이크나 혐오발언 등 테크 기업을 악용하는 경우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에반스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문한다.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원하지만 플랫폼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검열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우리는 혐오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통계 자료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더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인도는 미국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이 두 국가는 나머지 모든 국가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많은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 중이다. 전세계 이커머스 매출의 40%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미국 회사에서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글로벌 전역에 제공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규제를 관할하는가? 글로벌 기업과 외국인에게 어떻게 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서비스가 글로벌화되면서 기업들은 가장 엄격한 규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치외법권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구글 클라우드,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는 중재 서비스(moderation service)를 제공한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와 안전하지 않은 콘텐츠를 감지하고 이를 검열하는 서비스이다. 그러나 이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블록체인처럼 탈중심화된 서비스가 더 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우려는 항상 존재해왔다. 철도가 처음 깔리고 자동차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처럼, 인터넷 역시 차차 자리를 잡을 것이다. 모든 규제와 정책은 주관의 영역이고 항상 어려울 것이다. 테크에 대한 규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크게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메리 미커의 인터넷 보고서가 떠오르는 전형적인 미국st의 심플한 디자인) '규제가 미래'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신선했다. 테크 기업에 대해 조금씩 회의적인 입장이 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이 나스닥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독과점을 막을 이유도, 막을 방법도 찾기 어렵다.
나도 FAANG의 주식을 일부 소유하고 있다. FAANG은 2020년대에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FAANG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있을 대로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FAANG과 현대 사회는 어떻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것인가?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를 찾아나갈 것이다. 페이스북은 광고의 사실 유무를 확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트위터는 거짓 사실에 대한 광고를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가 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우리는 효과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악의 결정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