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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May 02. 2023

너에겐 다 계획이 있었구나!

육아에세이 │또래관계 갈등을 대하는 자세

아이가 어느 날 유치원 등원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가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단다. 내가 그동안 유치원 등원을 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마음을 잘 다독이며 물어보니 최근 들어 같이 노는 한 아이가 팔과 다리로 배를 때리고, 귀와 코를 꼬집고 하는 등 아이는 괴롭히는 행동들을 온전히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상시 잘 울지 않던 아이가 눈물까지 보이며 유치원 가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뭐 사실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비교적 꽤 자주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은 왠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사실 아이가 스스로 '하지 마',  '저리 가' 등의 말을 하거나 아프고 짜증이 나면 울어버리는 행동을 해야 상대방 아이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는 유치원에서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대로 얼어버려서 울음조차 낼 수 없는 아이인지라 이런 부정적인 의사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으로 생각이 된다.


상대방 아이가 잘 못한 것은 맞지만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 내 아이의 태도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구증'증세가 점점 좋아지면서 작게나마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네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잘못도 있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한테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에 분명 그 아이가 잘 못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래도 네가 하지 말라고 말이든 행동이든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봐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하지 말라는 말 말고 다른 말은 없어?'


........


속으로 '꼬집으면 아파' 등 몇몇 말들이 생각났지만, 결국 다 비슷한 뉘앙스의 부정적인 말들이기 때문에 가장 쉬운 '하지 마'도 아직은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하지 말라는 말이 힘들면, 티라노 사우르스가 되어 '왁'하고 소리를 크게 질러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다행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의지를 내보였고, 그다음 날 등원 길에 스스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그ㅇㅇ이 꼬집으면 소리 질러볼게.'


스스로 용기를 내는 모습에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유치원 선생님께도 아이의 등원 거부 이유와 상황을 자세히 여쭈어보고, 쌍방과실이 아님을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내 아이의 말만 들은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상황을 100%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방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이기 때문에 집에서 계속해서 지도를 하겠다는 말과 더불어 현재 아이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울러, 이런 상황에 마음이 힘들 때, '힘들었겠다'라는 위로의 말을 진심으로 해주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 아이니 선생님께서도 아이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좀 해주시길 부탁드렸다.


초보 엄마인 나는 이 일로 며칠간 고민도하며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사실 불변의 법칙처럼 어느 기관이나 학교를 가도 행동이 크고 거칠고 괴롭히는 아이는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일까?라는 고민에 대한 결론은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어느 정도 큰 틀에서의 결론은 냈다.


아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부모가 함께 겪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야 그 아이에게 사과도 요구하고 따끔하게 이야기를 해주고도 싶지만, 이런 식의 대응은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


1)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습을 해야겠다는 점

2) 내면의 힘, 마음근력을 키워주어야겠다는 점

3) 이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해결방법을 같이 찾아보며 금방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점

4) 스스로가 못나서 발생한 일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깨닫고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이 있는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점이다.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 또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작은 문제 상황에서 아이는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상황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스스로 용기를 내어보고 방어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상황으로 변한다면 '전화위복'을 이루어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가 배워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마음을 읽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연습할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 상담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아이는 본인이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타인의 감정까지 생각을 한다고 하셨다. 나는 이것이 정말 잘 발전하면 타인을 잘 배려하는 아주 훌륭한 인품을 가진 어른으로 크겠지만, 자칫 상대방의 눈치를 많이보고 내 것이 없는데도 남한테 주려하는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아이의 이타적 성향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장점으로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임무가 있는 엄마이다. 타인의 감정도 잘 살피면서 스스로 부정적인 표현을 잘 다룰 줄 알고, 상황에 맞게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 아이와 잘 연습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러면서 엄마 또한 성장하는 것이겠지! 부모는 매 순간 낯설고 어설프지만 아이 키우면서 내면이 조금씩은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기특하면서도 아이의 귀여운 생각과 계획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 동안 아빠가 저녁밥 다 먹기만을 기다리며 '아빠 우리 싸우자!, 엄마 나랑 운동하자, 씨름하자, 씨름기술 좀 알려줘!'라고 했던 아이. 기술을 습득해서 그 아이에게 나름의 귀여운 복수혈전을 꿈꾸고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맨날 싸우자고 해서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는데, 미스터리 한 퍼즐이 맞추어지는 순간이었다. 너에겐 다 계획이 있었구나!!


속으로 '그래, 마냥 맞지만은 않을 테다' 하는 식의 그 마음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한 후 아이에게는 "그 아이가 아직 노는 법을 몰라서 때리고 그랬대."라고 다독이며 이야기해주었다.


어느날 아이는 트리 앞에서 소원을 빌며 마지막 소원으로 이렇게 말했다.


"oo이 노는 법을 빨리 배워서 같이 재밌게 놀게 해주세요."

......


이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 어른들은 속마음이 흙탕물이 되어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다시는 안보고 싶은 마음에 "그 아이랑 놀지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본인을 아프게 하는 그 행동이 싫을 뿐이다. 결코 그 아이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갈등 문제에 너무 적극적으로 개입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이들 관계는 변할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나중에 부모들이 얼굴봐야 하는 상황에서 뻘쭘하고 난처해지는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는 갈등상황에서 약간의 도움만 주면 스스로 잘 해쳐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다행히 그 아이와 큰 문제 없이 놀이도 같이 하며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이렇게 내 아이는 작은 산을 하나 잘 넘은 것이다. 오늘도 다시 깨닫는다. 아이들 마음은 어른보다 100배는 순수하고, 나보다 지혜롭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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