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토리 Apr 28. 2023

너의 작은 일탈을 응원할게

육아에세이│초코송이의 비밀 추억

저녁밥은 우리 집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와 인사를 나누고, 그날 아빠와 아들이 함께하는 첫 활동의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날의 일들을 대뇌이며 각자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며칠 전 아들이 밥 먹다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 있잖아, 이거 비밀인데, 오늘 유치원에서 윤이가 초코송이 먹을래? 그래서 다홍, 시후, 나 이렇게 4명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먹었어"

"아~~ 그랬어?"


아이의 말에는 2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비밀인데 엄마 아빠에게 말해버린 것이다. 비밀을 혼자 간직하기 묵직해서 그 무게를 덜고 싶었던 마음과 엄마 아빠도 같이 공범이 되었으면 하는 귀여운 마음이 묻어났다. 다른 하나는 바로 초코송이다.


유치원은 과자(가공식품)나 초콜릿, 사탕 같은 군것질을 가져가면 안 되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유치원이다. 왜냐하면 아이들 먹거리에 무엇보다도 신경을 많이 쓰는 유치원이라 유기농, 무농약 제품들만 먹이고 가공식품, 냉동식품 같은 것들은 먹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 선생님들은 요즘 보기 드물게 '권위'가 살아있는 곳이다. 선생님 말에는 힘이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규칙들을 잘 지키려고 부단히 애쓴다. 어떤 면에서는 선생님 말이 답이고 진리이다.


그런 곳에서 한 어여쁜 친구가 아주 맛있는 초코송이를 한 봉지 가져왔고,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고 싶은 마음에 5~6살 아이들 4명이 의기투합해 옹기종기 화장실에서 변기를 둘러싸고 서서 몰래 나누어 먹은 것이다.


나는 사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워낙 FM적인 성격과 안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늘 긴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귀여운 일탈을 시도한 것이다.


이건 나중에 같이 초코송이를 먹었던 동생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 동생은 처음에 '안 먹을래'라고 대답했지만, 1살 형인 우리 아들이 '한번 믿어보자'라고 하며 같이 먹자고 했단다. 순간 복잡한 생각을 거친 후 나온 결정이었을 텐데 '믿어보자'라는 말이었다니, 웃기기도 하고 귀엽고 기특한 마음에 한동안 킥킥대고 웃었다.  


내가 추가로 물었다.


"몰래 먹으니까 어땠어?"

"나 3개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엄마!"

"하하 몰래 먹는 게 원래 진짜 맛있는 거야"

"그래?"

"응 엄마도 어릴 때 몰래 먹고 그러면 그게 그렇게 맛있더라"

"엄마도 그랬어?"

"그럼~ 근데 초코송이 봉지는 어떻게 했어? 봉지 때문에 선생님한테 들킬 수도 있었겠는데?"

"안 들키려고 우리가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지로 잘 가려놨어!"

"아......(전략적이군),

근데 비밀인데 이거 엄마 아빠한테 말해서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됐는데... 괜찮아?"

"응 선생님들만 모르면 돼, 나 엄마 믿어, 말하면 안 돼"


이번 아들의 귀여운 일탈 에피소드를 들으며 몇 가지를 느꼈다.  

첫 번째, 친구들과 협업을 하는 6살이 되었구나

두 번째, 전략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구나

세 번째, 가끔은 일탈을 해도 되는 것을 알게 되었구나

네 번째, 친구를 그리고 엄마를 믿어주는구나


엄마를 믿어주니 이런 이야기도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겠지! 사춘기 때도 부디 이렇게 해 다오.

엄마도 이 비밀 평생 지킬게!

부디 선생님들이 이 글을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아이는 옳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