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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May 30. 2023

침묵에 관한 고찰

상대를 배려하느라 자기 자신은 배려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억지로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놓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공허해지고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영주는 민준과 한 공간을 사용하며, 침묵이 나와 타인을 함께 배려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p43 -


최근 틈틈이 읽고 있는 소설책 속 침묵에 관한 글귀를 읽으며 침묵에 관한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유독 침묵이 어려운 사람



관계가 덜 형성된 누군가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공기의 느낌도 다르다. 누군가는 이때 흐르는 침묵이 적당히 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침묵이 매우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 


침묵이 편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성격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 수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근원적 존재감을 지닌 사람일 테니까. 


침묵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은 본인의 자존감을 사람들 사이의 존재감에서 찾으려는 사람일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 본능이 지나쳐서 사람들 틈에서 끊임없는 '말'로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마치 자기의 '말'이 곧 '자존감'이라 생각하는 경우다. 이런 사람은 잠깐의 침묵의 시간도 어렵고 힘들다. 



침묵 =  비밀을 지키는 것



문득 침묵의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졌다.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상태, 정적이 흐르거나 그런 상태. 이것은 내가 아는 침묵의 의미와 얼추 맞았다. 그런데 세 번째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밝히지 아니하거나 비밀을 지킴 또는 그런 상태'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아! 침묵의 또 다른 뜻은 비밀을 지킨다는 것이구나. 침묵은 의리와도 같은 의미였구나.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비밀을 지키는 것이라니. 나는 침묵으로써 누군가의 비밀을 지킨 적이 있던가? 몇 번이나 그랬을까?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더욱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순간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침묵' 검색결과



침묵도 연습이 필요하다



침묵은 경청하는 기술 중 하나인 듯하다. 경청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냥 무표정으로 소리만 듣고 있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라 할 수 없다. 눈을 맞추고 리액션을 하며 마음으로 들을 때 비로소 경청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경청을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듣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다음 이야기를 뭐를 할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 아니다. 공감하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대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침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침묵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각한다고 되지 않는다. 침묵도 연습이 필요하다. 대화하면서 침묵이 주는 공기도 느껴보고 침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상대방 반응은 어땠는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위로라는 감정이 들었는지? 확인하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위로의 순간, 침묵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속상함을 토로하며 서로 말로 위로를 주고받는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나도 해봤는데, 그거 별거 아냐. 시간이 지나가면 다 좋아져. 등등 가벼운 위로의 말들은 다시 살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삶과 죽음을 고민하며 인생의 절벽 끝에 선 사람,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는 사람,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는 1차원적으로 추측하는 감정 위로 쏟아내는 위로의 말들은 귀로도 들리지 않고, 마음으로 더더욱 다가오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쭙잖은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될 때도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나는 말 중에 위로하는 말이 제일 어렵다. 곁에 있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쓰이고 같이 힘들다. 그런 측은한 마음에 적당히 그 사람의 입장을 느껴보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사람에게 그런 방법의 말들이 진짜 위로가 될까? 그냥 곁에서 침묵하며 힘든 시간을 묵묵히 같이 견뎌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육아에도 침묵이 필요하다



아이의 사고력이 좋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도 있을까? 그런데 사고력은 언제 어떻게 길러질까? 사고력은 사고하는 시간 속에서 길러지는 것 아닐까? 사고하려면 그럴만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각자 생활하는 범위가 커져 여러 군데 기관을 다니느라 온전히 멍 때릴 시간이 부족하다. 집에 있는 시간에라도 최대한 아이에게 잔소리는 멈추고 멍 때릴 시간을 주어야 사고력이 생기지 않을까? 


아이가 멍 때리고 사고를 하려면 부모가 하루에 일정시간은 침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 아이와 대화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와 밥을 먹을 때, 함께 놀 때, 책 볼 때, 누워 잠들기 전까지 대화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다만, 아이도 혼자 멍 때리며 하루의 일과도 돌아보며 마음속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는 것이다.  


아이를 위로할 때에도 침묵은 아주 좋은 무기가 된다. 아이가 넘어져서 다쳤을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 친구랑 싸우고 왔을 때 등등 위로받고 싶은 아이의 순간들이 참 많다. 이럴 때는 아이 마음 공감만 해주고 그냥 한번 꼭 안아주며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많이 반성해 가며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알게 되었다. 위로의 순간, 많은 말과 아이에게 도움 된다고 착각하는 말들은 쓸모없을 때가 많았다. 



침묵은 배려하는 태도다



대화는 때때로 공평해야 한다. '말의 양'으로 대화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고, 그 관계는 결코 건강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대화에서 배려는 '말의 양'이다.  


내가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당연히 좋아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내 이야기를 한참 동안이고 들어주는 것을 즐긴다고 착각하면 절대 안 된다. 내가 일정 시간 이야기를 했으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도 가져야 그 관계는 어느 정도 공평해진다. 상대방 이야기를 할 때는 침묵하며 듣는 것이 매너이다. 중간중간 감정 추임새를 넣거나 공감하는 말은 좋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로채서 자기의 경험을 5프로 정도 보태어 상대방 경험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것은 최악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마음으로 들으며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곧 배려하는 마음이고 태도이다. 



침묵은 '때'가 중요하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 말을 하고, 꼭 말해야 하는 순간 침묵하는 것은 최악이다. 침묵은 '때'가 중요하다. 자신의 권리를 잃어가고 있을 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등 반드시 말이 필요할 때에 침묵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때는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또한 너무도 부당한 타인의 상황에 지나친 침묵을 하게 되면 자칫 침묵했다는 이유로 뜻하지 않게 방관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랑도 타이밍이고 침묵도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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