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벚꽃이 아니라고요!

『책은 도끼다』 박웅현

by 책토리

4월 초, 벚꽃이 만개한 절정을 누리고자 집 뒷산으로 올랐어요. 불과 1주일 전과 너무 다른 화려한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었지요. 감탄하던 중 '그래, 여기 나름 벚꽃길이 있었잖아, 거기로 가보자.' 하며 발걸음을 옮겨서 걸으며 역시나 화사한 옷을 입고 있는 나무들 보며 봄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짝꿍이 '이거... 벚꽃이 아닌가 봐, 나무에 살구나무 푯말이 걸려있어!' 하는 거예요. 오잉~ 무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진짜 살구나무라 표시되어 있더라고요... 우린 여태껏 그 나무들이 벚나무인 줄 알고 벚꽃명소라며 벚꽃을 보러 여길 온 것이었습니다. 약간 뒤통수 맞은 느낌도 들고 왠지 모르게 씁쓸한 느낌이었지만, 마냥 씁쓸해하기에는 꽃이 주는 감동이 너무 컸네요.

'그러고 보니 꽃이 전체적으로 좀 붉은 분위기네'
'꽃송이가 몽실몽실 뭉쳐있는 느낌도 들어'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지했던 우리가 웃기다며 깔깔깔 웃기도 하며, 찰나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 그리고 우리 주변을 조금만 관심 있게 보았더라면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여길 오지는 않았을까요? 왜 당연히 벚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요? 한편으로는 벚꽃보다 더 예쁜 꽃을 알게 되어 어제, 발견의 기쁨을 진심으로 느낀 하루여서 너무 감사한 마음도 들었어요.


최근 박웅현 님이 쓰셨던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고, 꽃구경 나가는 길에 가방 안에는 이 책 후속 시리즈인 『다시 책은 도끼다』를 들고 나왔습니다. 짬이 날 때 읽기 위해서지요. 『책은 도끼다』에서는 주로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면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는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에 관한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요새 저는 동시에 여러 권의 책들을 같이 있는 나름의 재미에 빠져있는데, 『책은 도끼다』는 저에게도 도끼가 마구마구 내려 찍는 느낌들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삶이 더욱 풍성해지기 위해서라고요. 독서가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터. 그렇다면 어떻게 삶이 풍부해지는가를 본인이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체득한 경험을 덧붙여 설명을 해주고,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의 물건과 사람 등이 책을 읽은 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인생에 스토리가 붙는다고 말이지요.

책을 읽고 나면 달라진다고 하네요. 볼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진다고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책은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적용이 되어야 유의미한 것인데, 책을 읽으면 안 보이던 게 보인다는 것이에요. 그동안 늘 얼굴에 달고 다니던 눈인데... 마음의 시력이 좋아지는 것일까요?

이를테면, 김훈의 글들 가운데 산수유꽃에 관한 글이 나오는데,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이 글을 본 이전과 이후, 본인 삶에서의 산수유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책을 보고 나서 산수유꽃을 보니 정말 화려한 꽃색깔이 아닌 은은한 파스텔톤의 노란빛을 띠고 있었고, 흐릿한 인상을 주더군요. 그런데 한참을 보고 있으면 몽환적인 느낌도 들었어요. 강렬한 색채였다면 조금 오래 보면 눈에 피로감이 올 텐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요. '들끓는다'는 표현이 기억이 남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보글보글 느낌도 났어요. 이렇게 산수유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책을 읽은 후의 긍정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다시 주말 꽃구경 갔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날도 이런 감동을 느낀 것이지요. 최근 꽃과 관련한 글들을 보고 나니 더욱 유심히 보게 된 것일까요. 그냥 벚꽃이겠거니 하고 봤던 나무였는데, 짝꿍이 살구나무 같다고 말을 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이제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이에요. 낯설기도 하고 반갑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벚꽃이랑은 느낌이 사뭇 다르고 살구나무꽃은 나무몸통이 더욱 까만 것도 같고 꽃받침은 자줏빛이 도드라져 보여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어요.

그러고 짝꿍과 나는 살구나무와 벚나무 차이점을 서로 검색하며 알려주며 꽃잎을 직접 주워 눈으로 확인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도 생겼네요. 제 아들도 옆에서 듣더니 '엄마는 살구꽃이 벚꽃인 줄 알았어?' 하며 한마디 거듭니다.

살구나무꽃은 꽃대가 짧아요. 그래서 서로 작은 공처럼 뭉쳐져 있는 모양이 아주 예뻐요. 꽃받침은 자주색이고,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요. 반면 벚꽃은 꽃대가 길어서 하늘하늘 흔들리는 빛 같은 느낌인 것이고요.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행동들을 요새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가만 보니 돗자리 펴고 늘 보았던 그 나무도 살구나무처럼 보여서 짝꿍에게 '저건 살구나무였나 봐'라고 이야기했더니 '나는 매화나무 같은데... 이미 꽃잎이 거의 떨어졌잖아.' 라면 이야기를 했어요. 직접 가서 떨어진 꽃을 보니 제가 보기엔 살구나무인 것 같아서 열매가 달릴 즈음에 다시 확인해 보자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열매 달리는 시기에 가서 보면 제 인생에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리라 믿어보렵니다.


그다음 날 외출하는 길에 들고나선 이해인 시집《작은 기쁨》에서 제가 전날 느꼈던 것과 비슷한 시 한 편을 만나서 피식 웃으며 그날을 잠시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책은 경험으로 연결되고 또다시 책으로 이어지는 법인가 봅니다.


<언니의 실수>

살구꽃이 진 자리에 말이야
글쎄......
갓 달리기 시작한 살구열매를
매실인 줄 알고 글쎄
언니는 있는 대로 열매를 많이 따다가
매실주를 담갔다지 뭐야
살구나무 잎사귀와
매화나무 열매가 얼마나 다른지
눈이 있어도 보질 못했나?

잘 알지도 못하고
확인도 안 해보고
성급하게 따다가
술을 담갔다니
우습지 않나요?

항아리 속 조그만 살구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어둠 속에 엎디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았을까?
'나무 위에 더 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여기 있는지...... 답답해 죽겠네'
하면서 말이야

해마다 봄이 오면
살구나무 볼 적마다
매화나무 볼 적마다
언니의 실수가 생각나
우리 식구 모두
하하 호호 웃는답니다


책에는 매화에 관한 글도 있는데,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 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좀 부끄럽지만 저는 얼마 전까지 따뜻한 봄에 피는 길거리 하얀 꽃들이 그냥 벚꽃이겠거니 하며 그 꽃들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못했답니다. 매화꽃 역시 벚꽃이겠거니 하며 보았던 것이지요. 아니 그냥 인식자체를 안 하고 '그냥 예쁘다.' 정도의 감상평을 하던 제가 꽃과 관련한 책을 보고 나니 매화라는 꽃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에 들어온 것이에요.

'아, 이게 매화나무 꽃이었구나.'
'매화는 벚꽃보다 일찍 피고 일찍 지는구나, 매화꽃이 질 때 즈음 벚꽃이 만개하는구나. 꼭 꽃들이 마라톤 하듯이 우리 사람들에게 봄이라는 계절동안 끊임없이 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구나.'
'매화꽃도 정말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떨어지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집에 와서 아들 보여주려고 사놓은 도감책을 펼쳐서 살구나무와 벚나무의 차이를 확인하며 지식으로서의 내용을 익히기도 했답니다.


박웅현 님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어려운 글을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본인의 글이 아닌, 그것을 설명하는 글로도 감동하게 하는 능력이요.

저자는 기억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매일 작은 것에 '감동'하다 보면, 내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입니다.

이 감동은 주변의 것을 가볍게 보지 않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라고 다짐도 해봅니다.
아마 내년 봄에는 더욱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볼거리가 늘어나 있겠지요?

내년 화사한 봄날에는 유명한 봄꽃 명소를 찾아다니기 보다, 매화꽃, 살구꽃. 벚꽃을 차례로 맞이하며 가까운 주변에서 봄의 행복을 발견하고 만끽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책의 좋은 시로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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