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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Jun 30. 2023

무기력증 있으신 분들만 보세요.

청소의 힘

한 동안 집안일 권태기가 오며 무기력증이 생겼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쳐다도 보기 싫었다. 누워만 있고 싶었고, 자고 나면 더 피곤하며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 이러다 내 삶 전체가 흔들릴 것 같은 공포심이 다가오면서 일단 누워만 있지 말고 일어나 보기로 다짐하고 내가 일하는 주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엉망이었다. 매일 마지못해 대충 치우고 닦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내가 이렇게 온전히 숨 쉬며 하루하루 살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무기력증에 빠져있나 싶어 몸을 좀 움직여보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최고의 명약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운동도 좋고 몸을 움직이는 일도 좋다. 나는 당장 어질러진 내 집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집안일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그동안 주방일이 하기 싫었던 이유도 찾아냈다. 바로 '동선' 때문이었다. 그리 넓은 주방은 아니지만 많은 물건들이 비효율적으로 수납되어 있었다. 수납부터 다시 내 입맛대로 해보기로 하고 수납함을 사들였다. 또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이 나의 일터이자 놀이공간이 되어야 재미있게 요리도 하고 식사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늘 먹던 스텐 식판을 대신할 작고 귀여운 그릇들과 좋아하는 색의 앞치마, 조리도구들도 구매했다.     


정리에 앞서할 것은 청소였다. 먼지를 닦아내고 기름때를 지우고 산뜻한 공간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내 평생 청소용품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구연산과 과탄산소다, 베이킹 소다를 세트로 사들이고, 레몬알코올수수를 만들고 청소에 진심인 사람인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다만 정리에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하루에 작은 서랍 한 칸 정리하기도 하고, 5분 정리한 것으로 끝내기도 했다. 시간여유 되는 날은 조금 더 많이 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정리에 몰입한 덕분인지 무기력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묘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처음 느끼는 성취감은 아니거늘. 집안일로 느끼는 성취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음속 잿빛 덩어리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랄까.


내가 가장 효과를 본 건 냉장고 정리였다. 이사 올 때 주방 쪽 일해 주시는 분께 혼날 정도로 냉장고 속은 전쟁터였는데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냉장고 대청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 가있는 오전에 주로 하다 보니 거의 2주가 걸렸다. 냉장고 정리 첫 단계는 비우는 것이었는데, 비우는데만 일주일이 걸린 듯싶다. 냉장고 정리하면서 역시 '채움'보다 '비움'이 더 어렵다는 사실도 다시금 깨달았다. 비우고난 후에는 트레이를 하나씩 분리해서 청소해야 한다. 몸을 가장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로 옮겨가서 물로 깨끗이 씻고 세워서 말리고 다시 냉장고에 끼워 맞추고 나름 신체운동 강도가 센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채워 넣을 곳을 공간에 맞는 수납통을 맞추어 채워 넣으면 된다.


이렇게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거쳐 수납하기 좋은 냉장고를 만들자 대단한 일을 한 느낌이 밀려왔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전한 것이 새벽기상이었다.  작년 11월무렵 시작한 새벽기상을 지금까지 유지를 하고 있고, 서하며 브런치 작가 도전까지 성공했으니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정리와 청소가 주는 효과를 단순한 성취감으로 정의 내리기에는 뭔가 아쉽고, 내가 느끼는 그 이상의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청소에 관한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청소력』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방'이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깨끗한 방에는 점점 행복이 찾아옵니다. 더러운 방에는 불행이 연이어 찾아오게 됩니다.

더러운 것이나 더러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해 두면, 거기에 마이너스 자장이 생기게 되어 자꾸 나쁜 사태를 끌어들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청소에는 분명히 힘이 있습니다. 주변 상황을 바꾸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마쓰다 미쓰히로, 『청소력』中


내가 자는 방이 나 자신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내 마음속이 어지러웠던 것 같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느낀 바와 같이 청소와 정리에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했다. 나는 정리된 깨끗한 집상태를 3주 정도 잘 유지해 보기로 했다. 우리 뇌가 새로운 행동에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은 21일이 소요된다. 하나의 습관이 고정되어 패턴화 되기 위해서는 60일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시간까지는 인위적인 노력도 필요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 번째, 무기력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몸을 움직이며 정리와 청소를 해볼 것을 권하고 싶어서이다. 몸을쓰는 다른 일도 좋고 운동도 좋다. 두 번째는 다시금 흐트러지는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의 기초가 되는 정리와 청소를 다시 열심히 해야 할 시점이다. 손흥민 아버지인 손웅정 님은 축구와 관련한 모든 일들과 독서만큼이나 열심히 하는 것이 바로 청다. 조금만 찾아보면 훌륭한 인물들이 청소와 정리를 강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다시 악질의 무기력함과 마주하지 않도록 육체의 움직임에 힘써볼 때이다.


나름 비우고 정리된 냉장고_다시 이 상태로 돌려보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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