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인접한 경기도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동네 아이친구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동네 이웃들이 생긴다. 하지만 내 친구가 아닌 아이엄마를 가까운 이웃으로 만드는 작업은 꽤나 에너지가 든다. 그리고 진정 친구가 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엄마들끼리 성향이 맞으면 애들은 잘 안 맞거나 혹은 이와 반대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바로 옆집(계단식 아파트라 한 층에 3세대가 있음)은 아들 또래의 아이들 2명이 있는 집이다. 아파트 입주하던 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눈사람 장인이 만들어 놓았을 법한 대형 눈사람이 있어서 요리조리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는데, 알고 보니 옆집 사람들 작품이었다. 눈사람 덕분에 자연스레 말을 걸며 인사를 하게 되었고, 둘 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육아가치관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동갑이라 말도 놓으며 편하게 하며 지냈다. 시간이 맞으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빠들도 같이 식사도 하고 인연을 이어나갔다.
"너네 두릅 먹니? 두릅 좀 줄까?"
"감자 좀 줄까?"
"사과 좀 줄까?" 등등
경상북도 울진에 친정이 있는 그녀는 엄마가 보내주신 일용할 식자재들이 오면 우리에게 나눠주곤 했다. 집밥을 해 먹는 우리는 고마울 따름이다. 친정엄마가 보내주시는 거면 싱싱한 것임은 물론 사랑이 담긴 식자재 아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않게 먹을 만큼 적당히 주어 매번 잘 얻어먹었다. 고마운 마음에 가끔 나도 과일이나 빵 등 먹을 것을 문고리에 걸어놓곤 했다.
지난해 여름, 옆집 가족이 한 달 제주살이를 하러 떠날 때 나는 선뜻 옆집 고양이들 밥과 물을 주고 응가를 치워줄 테니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했다. 고양이들 때문에 시댁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려던 참이었다며 고양이들 우리에게 부탁하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우리는 아이와 옆집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가서 고양이들 밥 챙겨주고 응가한 맛동산(?)을 열심히 치워주었다.
덜렁대는 내가 한 번은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외출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관문이 열려있던데... 일부러 열어놓은 거니?" 나는 아니라며 문 좀 닫아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 앞에 냉장 혹은 냉동식품이 한참 동안 있으면 연락이 온다. "문 앞에 냉장식품이 계속 있던데... 괜찮은 거야?"라고 말이다. 여행 중에 이런 택배가 오면 참 난감한데 이럴 때 이웃의 따뜻한 손길은 너무 고맙다.
그렇다고 우리는 자주 연락하거나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았다. 만날 때면 미리 약속을 정하고 집에 놀러 가기 전에도 지금 간다고 연락을 하고선 간다. 가는데 10초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서로 배려하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만남을 유지했다.
아이들 다니는 기관이 달라 한동안은 자주 못 보기도 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지도 않아서 잘 지내고 있는 건가 새삼 궁금해질 때도 있었다. 바쁜 시기에는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고 가끔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이웃이었다.
옆집 부부는 야심 찬 계획이 하나 있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 제주도로 이사 가는 것이다. 제주도 내려간다고 하면 다들 국제학교를 가기 위해 이사하는 줄 알지만, 바닷가 근처 시골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자 이사하는 것이다. 현재 하는 일을 접고 시골로 떠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거늘. 그들은 계획 이행을 위해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녀는 대기업 플랜트 분야에서 일을 했던 인재였음에도 손재주를 잘 살려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웠고, 광고업에 종사하던 남편은 인테리어어와 목공 작업 등 기술을 배워 둘 다 고정된 장소가 아니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되어있었다. 돈이 아닌 행복을 좇는 그들이 멋지기도 했다.
그 계획은 어제 실행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7살인 여름에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나름의 정을 나눈 이웃이라 그런지 서운하기도 하고 허전한 감정이 올라왔다. 시절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이 말이 지금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우리는 한 때 가까운 이웃으로 얼굴 보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절인연으로 옆집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먼저 짐을 빼고 잔금을 치르러 마지막으로 오는 날, 그녀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헤어지는 게 뭔가 아쉬워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그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도무지 관심도 없었고, 관심 가져주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던 나였지만 이제는 그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과 오고 가며 인사도 나누고 필요할 때 소소한 도움도 요청하고 받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