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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Jul 29. 2023

비 오는 날 좋아하시나요?

육아에세이 │우비 입고 놀기

아들 써니가 다니는 숲유치원은 산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비포장도로를 5분 정도 달려야 나오는 작은 유치원인지라 날씨가 좋지 않으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작년 여름엔 비가 많이 와서 한바탕 물난리가 나서 엄마들도 손 걷고 나서서 함께 복구작업까지 했다. 다행히 방학 때였던지라 아이들이 다치거나 하는 피해는 없었다.

올해도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날 안전문자는 계속 오는 탓인지 걱정이 커져 그날은 유치원을 쉬기로 결정했다. 오전에 비가 좀 그쳤길래 아파트 내에 있는 카페테리아나 가볼까 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우비 입고 밖에 나가 볼까?"

"응 좋아!!"

"우비 입고 카페테리아 가보자."


그런데 웬걸... 아파트 안에서 그냥 놀았으면 좋겠는데 써니는 뒷산을 가자고 졸랐다. 나는 숲을 편애하는 사람인데 써니도 숲을 참 좋아한다. (근데 이런 날 산이라니... 산사태 무서워서 유치원도 쉰 거라고!!)

비 때문에 오늘은 산에는 못 가고 공원까지만 가자고 이야기하고 뒷산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을 지나 가파른 아스팔트 언덕길을 오르며 웅덩이를 만나면 참방참방을 실컷 했다. 올라온 언덕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굳이 옆쪽 얕은 산길로 내려가자고 한다. 역시 산길을 좋아하는 써니다.



계곡같이 물이 많았던 나지막한 산길


비 많이 올 때 가니 나지막한 산길이었는데도 얕은 계곡처럼 보였다. 그걸 보고 써니는 또 신이 났다. 유치원에서도 장화를 신고 산을 종횡무진하는 아이라 그런지 거침없이 물길에 발을 넣고 물살 흐름을 타고 산길을 내려왔다. 반대로 물살을 가르며 올라가기도 하고 참방참방 물질(?)도 실컷 하고 장화에 물이 꽉 들어찰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사실 나는 비 오는 날이 싫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공포감이 올라오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버스 타고 가다가도 비가 많이 오는 데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면 버스가 뒤집힐 것만 같은 무서움이 생긴다. 교통사고가 나진 않을까. 내가 없어져 버리진 않을까. 늘 불안했다. 어릴 때 기억이 많지 않은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 없이 혼자 하교하던 길에 비닐우산이 뒤집혀 갈기갈기 찢어진 기억은 선명하다.


그때 너무 무서웠던 탓일까. 비 오는 날 바람까지 많이 부는 것은 내 심장이 요동치는 최악의 조건이다. 불안한 나의 정서 때문이었는지 날씨 때문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 공포심에 불안한 마음을 품었을 때 엄마나 아빠는 내 곁에 늘 안 계셨다. 그리고 그 무서웠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짝꿍과 연애하던 시절, 보라카이 여행 갔을 때에도 비가 많이 내리는 밤에는 도통 잠을 자지 못했다. 게다가 숙소 처마에 닿는 빗소리가 어찌나 큰지.  


"왜 그리 잠을 못 잤어?

"비 많이 와서 바다 넘치면 어떻게 해."

"(ㅋㅋㅋ) 바닷물이 넘친다고??"

"태풍 불면 해일도 일어나잖아!!"


태풍도 아닌데 해일이 어쩌고 저쩌고 바닷물이 넘친다 주저리 헛소리 하는 내가 웃겼던지 나를 보고 한참 웃고 지금도 가끔 이 일을 이야기한다. 이런 내가 아이는 나 같은 불안감이 없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비 오는 날 즐거운 추억으로 도배해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비가 오면 함께 우비 입고 나가 논다. 비가 적당히 오는 날에는 조심조심 걸으며 산길 산책도 한다.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고,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해주고 싶다. 써니는 숲유치원 다니는 아이답게 비 오는 날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지렁이, 방아깨비, 달팽이 등 비가 오면 곤충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단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 좋단다.




바람이 많이 불면 차라리 우산을 접는 게 낫다고 이야기도 해준다. 그냥 비를 맞는 게 더 낫다고. 가끔 내 심장이 쿵쾅거릴 때가 있지만 최대한 견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물 한가득 담긴 장화의 물을 빼고 집으로 돌아왔다. 목욕까지 싹 하고 나니 세상 개운했다.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긴장이 풀어져서 노곤노곤한 느낌이다. 비 오는 날 마음이 불안한 나는 산길에 가면서 걱정을 품었는데 잘 놀고 와서 다행이었다. 다정한 써니는 나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엄마, 나 세상에서 오늘이 제일 재밌었어"

"으잉? 정말? 그렇게 재미있었어?"

"응!!!!"


정말 예상치 못하게 찐하게 놀았던 날이다. 비 많이 오는 날 산에서 놀았던 것이 꽤나 즐거웠나 보다. 참 다행이다. 내 아들에게 비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비 오는 날 안전하게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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