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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Aug 02. 2023

1년에 2번 꽃 받는 여자

육아에세이 │

나는 참 지독하게 더운 날 태어났다. 얼마 전 생일 날 아침 일찍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직설가이며 가끔은 독설을 내뱉기도 하는 아주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이잖아! 그래서 아침 일찍 전화했어! 이렇게 더운 날 애 낳느라 정말 고생하셨슈!!"


"무지 더운 날 병원가려고 택시를 잡아타고 아주 힘들었지. 너 낳고나서 내가 고무줄바지 입은 배 전체가 땀띠가 나고 더위를 참지 못하고 선풍기를 쐬는 바람에 무릎에 산후풍이 와서 혼이 났어, 비가오면 무릎 시려서 얼마나 고생했나 몰라. 너를 낳으려고 계획한게 아닌데 어쩌다가 한여름에 생겨서 엄청 고생했지!"


어쩌다가 생겨버린 나도 얼떨결에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이미 여러 번 들어 익숙한 말들이지만 마치 처음 듣는 것 처럼 맞장구를 치면 엄마는 속사포 랩을 하듯이 말을 쏟아내신다. 이런 폭염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날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의 생일은 응당 축하하고 기념해야할 기쁜 날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낳아준 '엄마의 날'로 기억하면 어떨까. 특히 나처럼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엄마가 더욱 많은 고생과 힘듦 속에서 아이를 낳고 돌보았을 것이다.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더니.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마음이다.  




아들 써니는 비교적 평온했던 임신기간과는 다르게 난산이었다. 간호사 몇 명과 힘주기를 반복해도 자궁문으로 보였던 아이 머리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호흡과 힘주기를 하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진통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수술 안 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는 집어치운 지 오래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수술시켜 주라고요!!' 소리를 질렀다. (욕은 안한게 참 다행이다;;) 이제는 너무 늦어 수술 못해준다고, 수술이 더 위험하다고 나를 만류했다.


여자 간호사가 배를 누르는 힘으론 택도 없었는지 남자 의사를 재빨리 모셔와 다시 분만을 이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아기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리하여 내 담당의사, 옆방 의사 앞방 남자 의사 몇 명이 분만실에 들어와서 누르기를 여러번.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결국 초음파기계를 가져와 도대체 아기가 뭘 하고 있는지 좀 보자며 초음파를 했다. 순식간에 분만실은 도떼기시장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기는 평온하게 머리를 6시 방향으로 하고있었다. 그러다가 의사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내 귀에 꽂혔다.

  

"응급수술 준비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건 최악의 상황이 아닌가! 꼬박 24시간 넘게 진통을 견디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수술을 한다고? 분명 이제는 너무 늦어서 수술이 안된다고 했는데...' 너무 억울해 분통이 터질 뻔했다. 같이 살면서 눈물방울 보기 힘든 신랑도 옆에서 온전히 함께 이 상황을 겪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때마침 진통의 파도가 밀려온 덕분에 손 놓고 있던 간호사들이 또다시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주었는데 쑥 빨려 내려 가는 시원한 고통과 함께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모두가 자연분만을 포기할 때즈음 아기도 억울했는지 최선을 다했나보다. 회음부가 난산이라 많이 찢어졌다고 했지만 난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역시 작은 고통은 큰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법. 출산 후 내 몸은 코끼리처럼 퉁퉁 부어있었고, 눈 주변 실핏줄들이 선명하게 살아있었다.


출산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조리원 침대에 앉아있을 때 들었다.


"어머! 아기 아직 안 낳으셨어요?"


조리원 청소이모님께서 아기를 낳고도 전혀 배가 들어가지 않은 나를 보고 하신 말씀이다. '조리원에 아기를 낳지 않고도 들어올 수 있나요!'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빙그레 웃으며 "어찌 아기를 낳고도 배가 조금도 들어가질 않네요." 라며 여유있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낳았겠지. 이미 수십년 지나 엄마의 출산 기억은 많이 흐려졌지만 무더위 속에서 나를 낳아준 것만으로도 엄마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생긴 날이다. 계획하진 않았지만 삶을 살아볼 기회를 주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앞으로 내 생일은 엄마가 고생한 날로 기념하겠다고. 내년 부터는 내 생일에 꽃다발을 드리겠다고 다짐해본다. 내 아들 써니 생일 날도 아들에게 당당히 요구해야겠다. 네 생일에는 네가 선물받는 날인 동시에 엄마에게 꽃다발을 주는 날이라고.




이번 내 생일은 여행지에서 맞이했다. 얼마 전부터 써니에게 엄마 생일에 예쁜 선물이 받고 싶다고 주문했다. 엄마 생일에는 예쁜거 주는 날이라고 강조하면서. 아들은 아빠에게 나가서 꽃다발을 가져오자고 조르더니 아빠를 끌고 숙소 밖 낯선 곷으로 모험(?)을 떠났다. 창 밖을 내다보니 초록 풀들만 듬성듬성 보일뿐이었다. 그저 작은 정성이 들어간 꽃 몇 송이면 충분한데. 왠지 돈주고 꽃다발을 사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정성을 요구했지만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한 미션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숙소문이 열렸다. 두 손으로 한아름 잡은 작은 꽃다발을 나에게 건네주며 '엄마, 생일 축하해." 한마디에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꽃은 더위에 금방 시들해졌지만 꽃의 예쁨과 꽃을 꺾은 이의 예쁜 마음은 내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잘 저장해 놓았다.


폭염에 찾아 만들어온 정성가득한 꽃다발


앞으로 나는 일년에 두 번은 꽃다발을 받을 작정이다. 아들 생일과 내 생일에.


숙소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_온통 초록투성이인 곳에서 꽃을 찾아오다니! 감사한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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