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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Sep 04. 2023

1. 묻지 마 소화불량

시련은 눈치 없이 불쑥불쑥 인생에 끼어든다.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배운다고 했던가.  

늘 그래왔듯, 적당히 내 인생에 뿌려줄 단비 같은 무언가이기를 바랐다.




2020년 1월 어느 날 저녁, 소화가 되지 않았다. 소화제를 먹고 바늘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따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도 소화가 되지 않아 운동장을 10바퀴 가까이 뛰어 보아도 그대로였다. 체기가 생각보다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한 달. 소화불량도 소화불량이지만 힘든 것은 가슴 답답함과 호흡의 어려움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가슴에서 턱 하고 막히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잠을 청하려고 누웠을 때 숨이 쉬어지지 않은 어떤 날은 공포심이 밀려와 스스로 응급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간 겪었던 증상을 이야기하며 복부 ct와 혈액검사 등도 해보았지만 결과는 이상 무. 아무 문제없었다.


"혹시 암은 아닐까? 소화가 안되니 위암일까? 조용히 찾아온다는 췌장암일까?"  


복부 ct까지 찍어본 마당에 의사의 무능력을 탓하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못된 버릇이 도졌다. 온갖 좋지 않은 상상들에 휘둘리고 있었다. 몸무게도 한 달 새 3kg 정도 빠졌다. 응급실 진료 결과를 들고 고대구로병원 소화기 내과로 갔다. 위내시경과 복부초음파를 받았다. 결과는 이상 무. 큰 문제가 없단다. 한국인 대부분이 있다는 위염만 좀 있을 뿐 정상이라 했다.  


극심한 소화불량은 곧 다른 증상을 동반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런 느낌이 공황장애일까. 소량씩이라도 뭘 먹었다 하면 배에서 출렁출렁 물소리가 났다. 마치 몸 안에 물통 하나를 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온종일 이명소리로 괴롭기도 했고, 먹는 양이 크게 줄어 변비도 생겼고 입은 심하게 말라있었다.


인위적인 트림을 해야만 먹은 음식물을 겨우 내려보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후두가 자극되어 만성후두염으로 진행되었다. 24개월 아들 써니는 호기심이 매우 왕성할 때라 수시로 그림책을 꺼내오는데 읽어줄 수가 없었다. 목 통증이 심했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뱃속이 진흙으로 가득 차서 돌처럼 굳어 내려가지 않는 이 느낌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설명한다 한들 믿어줄 리 만무했다.  


"물이라도 자주 마셔줘."


소화가 되지 않는 나를 두고 친정 엄마가 하시는 말이었다. 그러나 물조차 먹는 것이 힘들었다. 물을 삼킬 때면 목구멍에 아몬드 크기의 여과장치가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한번 걸리면서 목구멍 뒤쪽이 자극이 되었기에 매우 소량의 물로 입만 축이듯 마실 수밖에 없었다. 


소화불량 초반에는 그래도 잠은 잘 자서 안심했다. 수면시간은 곧 몸의 회복시간이라 생각했던 터라 잠이라도 잘 자니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먹는 양이 급격히 줄고 기력이 떨어져 활동량이 없는 상황에서 잠을 잘 자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주변 지인들과 연락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얼굴 보자는 만남은 생각도 못했을뿐더러 매번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쳐갔다.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괜찮지 않은데 괜찮게 보여야만 하는 인위적인 상황들에 점점 사람들과 멀어졌다. 잘 지내냐는 고마운 안부연락에도 무심히 대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 마음은 온통 뾰족한 가시밭이었다.


"너무 소화가 안되면 한 동안 죽만 먹어봐."


이 시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다.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먹는 죽. 그 죽 몇 스푼조차 소화를 못 시키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난 도대체 무슨 병일까? 이렇게까지 소화가 안될 수 있을까?"


30 몇 년을 어떻게 먹고 소화를 시키고 살았는지 곱씹어보았다.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소화가 되지 않는 원인을 찾아 그에 맞는 치료법을 알고 싶었다. 내 신경은 온통 위장에 쏠려있었다. 뭘 먹기만 하면 힘든 고통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온종일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기도 제쳐두고 매일 핸드폰으로 증상 검색놀이에 빠졌다.


무슨 병에 걸린 건지.

어떤 검사를 하면 좋을지.

어떤 약과 보조제를 사야 할지.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지.


머릿속엔 온통 질문 투성이었고, 내가 챙겨야 할 가족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나의 일상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산책하며 민들레 꽃을 꺾는 소소한 일상마저 사라지고 있을 때 즈음.




겨우 잠이든 어느 날 한참을 뒤척이다 꿈을 꿨다.


누군가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었다. 안아주는 손에는 에너지가 느껴졌고 무언(無言)의 침묵 속에 몇 마디 위로를 전달받은 느낌이었다.

  

"하늘은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의 시련만 보내준다고 했어요. 어떠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당신은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라고 해주는 듯했다. 그래, 이번 시련이 결코 처음이 아니잖아. 내 인생의 무수한 시련 가운데 간단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한 줄 기록과 같은 거야.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급작스런 시련을 대하는 법은 그저 잘 견디는 것 일 테니까. 이럴 땐 상투적인 말이 정답인 듯싶다. 


견뎌보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


<1편 끝.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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