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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Aug 19. 2023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가요?

마음에 가닿는 위로에 대한 고민

타인 앞에서 말하기 힘들어했던 아들 써니는 요새 부쩍 목소리가 커졌다. 태권도 다닌 지 7회 차, 아주 큰 목소리의 인사는 아직 어렵지만 낯선 사람에게 인사도 시도해 보는 기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업도 혼자 씩씩하게 들어가서 4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앞에서 본인 이름을 크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써니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그렇게 큰 용기가 어디서 났냐며 기분 좋은 호들갑을 떨며 써니를 응원하며 기를 북돋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1년 전 상황이 떠오르며 어느 날 써놓았던 일기가 생각났다. 그날은 써니에게 축하가 아닌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5살 봄, 폐렴으로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밥 먹다 말고 써니가 말했다.


"엄마 나는 유치원에서 목소리를 잃었어"

"응??? 써니 유치원에서 식사기도도 하고 목소리를 되찾았잖아!"

"목소리가 작아, 난 크게 말을 하는 건데 작게 소리가 나와"

"나만 목소리가 작아...... 나는 왜 말하는 게 어려운 거야?"


본인은 왜 말하는 것이 어려운 거냐며 울먹이는 아들에게 당장의 해결책은 주지 못하지만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선택적 함구증은 너의 의지로 한 순간 좋아지기 어려운 것이라고, 개미처럼 작게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위로와 함께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답을 해주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를 찰나에 고민했는데, 혜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만' 왜 그렇냐는 질문에 '너만'이 아니라고 부정해 주면 되는 거였을까. 결국 주저리주저리 혼자 떠들고 말았다.


"써니 아주 많이 용기 내서 지금 많이 좋아졌어, 예전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었잖아! 지금은 작지만 아주 잘 나오잖아! 얼마나 큰 발전이 있는 건데!! (어쩌고 저쩌고 중략...) 암튼 지금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써니는 내 말을 위로라고 받아들였을까. 써니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말로 누군가를 위로한 다는 것, 아무리 역지사지를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고 해도 내가 직접 겪고 느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몇 마디의 말'로 위안을 받기도 위안을 주기도 어렵다. 어쩌면 몇 마디의 말로 위로와 위안을 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매우 건방진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 날 아들을 향한 나의 위로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패라고는 여기지는 않으련다. 위로에 대해 훗날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에게 하는 말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받는 위로와 주는 위로 모두 어렵게만 느껴진다. 왜 그런 걸까?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마음을 알아주는 위로를 받아본 경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상황을 대강 추측해서 오류 가득한 말들을 늘어놓곤 했었다. '라떼'를 찾으면서 나이 몇 살 더 먹은 언니랍시고 젊은 꼰대가 되어 입을 나불거린 적도 많았다. (이불킥의 주요 단골손님;;)


어떤 위로가 진심으로 상대방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이제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 건넬 수 있는 '진짜 위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현명한 대답이다.
손보다 혀가 더 많이 휴식하게끔 하라

침묵은 무지하고 무례한 이에 대한
최고의 해답이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후회스러운 일이
백가지 중 하나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해버려 후회스러운 일은
백 가지 중 아흔아홉이다.

 -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中


어쩌면 그들이 겪었을 상황과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저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딱 이 정도만이 위로를 위한 가장 좋은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말이 아닌 침묵일 수도 있겠다. 그저 이야기 들어주며 곁을 함께 하는 것. 위로를 가장한 말들은 어쩌면 더 큰 상처가 되어 상대방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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