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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09. 2023

12. 성격이 예민한 건 아니라고요.

자율신경실조증 인간이 받는 오해

자율신경실조증은 진단을 받기 전에는 예민한 성격,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 반응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시댁에서는 아직도 예민한 성격 때문에 심히 아팠던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까탈스럽거나 예민하게 굴지도 않을뿐더러 친구들이 전생에 남 자였을 거라고 할 정도로 털털함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비염으로 고생하는 내가 고양이 네 마리 키우는 시댁 가면 내 신상 검정티셔츠에 고양이 털이 마구 들러붙어도 돌돌이가 있지 않냐며 허허실실 웃으며 돌돌이질을 하면 그만이다. 가리는 음식이 없어 메뉴 결정권을 늘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마음 한 군데가 꼬집힌 듯 아프지 않고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성격이 예민하다는 평가에는 글쎄... 반기를 들고일어나 조목조목 외치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기도 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정확히 병의 원인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성격이 아니고 신경이 예민한 건데요... 하고 주저리 설명을 해도 '그러니까 어쨌든 네가 예민한 거 아냐!' 이런 말을 들을 게 뻔하니까 내 입만 아파질 수도 있다. 근데 주변인들이 뭐라 생각하는지에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했다. 성격이 예민하다고 평가당하면 그냥 저들은 저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율신경실조증 진단받은 당사자인 나는 스스로도 성격이 예민해서 그랬던 건가? 하며 아팠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면 안 된다. 그러다가 언제 또 지옥에 발을 담그게 될지 모를 일이다.





뇌신경센터 입원 치료 기간에 비정상 상태였기에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까지 말을 들었는데도 머릿속에 참 떠오르는 질문들이 많았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저는 아프기 바로 전에도 나름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울함도 없었거든요. 근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물도 소화가 안될 정도로 자율신경이 무너질 수 있는 건가요? 저녁으로 삼계탕이랑 맥주를 먹고 난 뒤 갑자기 이렇게 된 거예요."

"아직도 정신이랑 신경을 구분 못하네. 공부 좀 하라니까~! "

(합리적 사고 불능 인간에게 이런 어려운걸 단시간에 알라고 하시다니요)

"술을 매일 마시면서 긍정적으로 생각만 한다고 간수치가 안 나빠져요?"

"아...(깨달음의 아~~) 아니요."


의사가 해주는 짧은 한마디로 아주 조금 깨달음이 왔다. 술을 매일 퍼마시면서 간수치가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긍정적인 성격과 마음가짐만으로 간수치를 좋게 하거나 혹은 나빠지지 않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간상태가 최악으로 갈 수 있는 '술'이라는 폭탄을 매일 같이 몸속에 넣어주는데 간이 그걸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의사가 말한 정신이랑 신경도 비슷한 맥락인 것 아닐까 싶다. 말과 생각으로는 '아 행복해, 괜찮아 잘할 수 있어' 따위의 온갖 긍정적 생각을 하지만, 매일 새벽 3시 넘어 잠에 들고, 잠들기 전 출출하다며 새벽에 이것저것 군것질도 해대고, 밥은 제때 못 먹어 어쩌다 한 끼 먹을 때 폭식을 한다면 몸이 망가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지사인 것이다. 흑수저 자율신경을 갖고 태어난 몸인지라 남들보다 몸에서 버텨주는 지반이 약한 데다가 감각은 둔해서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도 몰랐으니 이런 사단이 났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율신경이 온도와 습도를 비롯하여 식사, 수면, 운동 등 규칙적인 생활습관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의사가 말한 비유에 따라 이야기하자면 나는 수년간 매일같이 술을 퍼먹어 간기능이 멈춘 것이다.




성격이 예민하진 않았지만 반성은 해야 할 것 같다. 타고난 자율신경이 이모양인데 주제도 모르고 뭘 하든 몸이 열심히 하려고 했다. 메타인지가 한참 부족했다. 나도 그저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투입해서 열심히 하면 그게 잘하는 것이며 잘 될 줄 알았다. 한때 덩치도 크고 체력 갑인 서양인처럼 며칠 밤을 새워서 공부하고, 일을 해도 끄떡없는 그런 강철체력을 가진 사람을 지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하면서 늘 공부를 병행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대학원 다니고 그러면서 피로는 꼭 술로 풀었다. 그땐 다행히 간기능은 괜찮았는데 위궤양을 얻었다. 어린 아기 육아하면서는 올빼미 좀비가 되어갔다. 제때 잘 안 자고 폭식 자주 하고 운동 안 하고 술로만 스트레스를 풀어서 미안하다 내 몸아!  


이제는 다행히 메타인지가 좀 올라왔다. 자율신경 흑수저인 내 주제를 잘 알아가고 있다. 우선은 건강에 필수라는 7~8시간 수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몇 시에 자든 수면시간을 중요시하는데 유혹받는 것들이 많아서 참 어렵다. 자율신경은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에 쥐약이기 때문에 커피, 술, 담배 3종 세트를 기피해야 한다. 3종 세트를 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 내 자율신경도 균형 있게 잘 유지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건강의 조건 아닌가! 역시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뭐든 정답인 듯하다.   


그러니까 결론은 자율신경실조증이 예민한 성격 때문에 나타난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율신경이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작동하기 위한 환경을 잘 만들어 주지 않은 탓이었고, 앞으로 건강하게 살려면 이 환경 목숨 걸고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12편 끝.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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