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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12. 2023

13. 한점 희망이 있다면

자율신경실조증 인간은 새나라의 으른이가 되어야 한다. 술과 담배, 커피를 많이 하지 않으면서 수면시간도 7~8시간 지키며 일찍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다행히 담배는 하지 않고, 나이 마흔이 다되어갈 때까지도 커피의 참맛을 알지 못하기에 자주 마시지 않는다. 술은 시댁에서 아주 가끔 과음할 뿐 그 외에는 맥주 한잔 정도만 들이키거나 마시지 않는다.


숲세권에 사는 덕분에 날 좋은 아침마다 등산을 다녀온다. 숲에 가면 숨이 내 몸 안에 잘 드나드는 기분 좋음이 느껴진다. 숨은 곧 삶이므로 기분 좋은 삶을 위해 숲을 자주 들락거린다. 초록이 주는 싱그러움에 반해 숲을 편애하게 되었다. 따로 시간 내어 명상을 하지는 않지만 산에 오를 때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숨을 느끼며 짧은 멍 때리는 시간을 갖곤 한다. 날이 궂을 땐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몸의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서 커피대신 차를 마시며 이완하는 시간도 갖는다. 보이차, 백차를 주로 마시는데 보이차류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항암효과도 있다. 중국 백차는 '1년이면 차, 3년이면 약, 7년이면 보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대로 만든 백차는 몸에 매우 좋다. 차 마시기는 그 행위 자체가 명상의 효과도 있기 때문에 차 맛을 음미하며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나른해지는 기분종종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서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내면의 나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된 것 같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얼 할 때 진정 행복하고 기쁜지 속닥거리는 시간은 치유와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야말로 건강한 생활을 부러 노력을 하고 있고, 노력해야지만 유지가 된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해 보기로 했다. 고등학교시절 가수 거북이의 백댄서 오디션을 보고 댄서 인생을 살 뻔한 적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를 해버렸다. 일을 하면서도 늘 하고 싶었지만 취미생활은 사치라고 내팽개쳤던 것을 이제는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댄스학원을 등록했다.


처음 곡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었다. 안무는 비교적 쉬워서 재미있게 배웠다. 안무를 다 배우면 나름 의상과 콘셉트를 맞추어 최종 영상을 찍어 기념하는데 이 작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트와이스, 전소미, ITZY, 리사 등 안무를 배워나가면서 춤 난이도도 점점 올라갔다. 안무선생님이 오전 취미반을 입시준비반처럼 가르치시는데(그만큼 열정적으로 지도하심) 내 폐활량이 그만큼 따라가 주질 못해서 늘 혼자 호흡 때문에 힘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려니 너무 힘들었다. 너무 격하게 연습을 하고 오면 기분은 좋지만 팔다리 힘이 빠지면서 소화가 더욱 안 되는 날도 많아서 댄스는 3개월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꼭 다시 해보고 싶었던 춤을 취미로 해보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마음공부를 위한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빠지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는 걸 좋아한다. 마음에 닿은 책 안에 언급된 책을 찾아 연결고리를 만들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읽으니 쓰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육아 이야기를 시작으로 글을 점차 쓰다 보니 어느덧 브런치 작가가 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글은 아니지만 성취감을 느끼며 내면의 힘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된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이제야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 든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시련이 내 인생 기본값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작고 큰 시련을 겪으며 단단해지는 것이 인생을 사는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련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거야라고 속닥거려 본다. 그땐 내 몸과 마음이 지금보다 단단해져 있겠지.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에 보면 보왕삼매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명나라 묘협(妙叶) 스님이 불자들에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 지에 대해 쓴 짤막한 글이다. 우리 몸은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병이 없길 바라지 말라는 저자의 말과 더불어 보왕삼매론 처음 한 줄을 읽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들이는 게 힘들지만 이젠 어느 정도 루틴이 되어가는 듯하다. 지새는 달이 보이기 직전 감성 돋는 시간에 글을 쓰고도 싶지만 해가 중천 일 때 글을 써야 한다. 집 앞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맛있게 홀짝이며 스트레스 풀고 싶지만 낮에 차 마시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아이 등원시키고 게으르게 퍼져있고 싶지만 몸을 움직이러 운동하러 가야 한다. 그래도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의 건강과 마음을 돌보는 이 시간이 남은 잔여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는 것 같아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3년 정도가 흐른 뒤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했던 소화불량도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봉아, 나 이제 진짜 자연스럽게 소화가 돼."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그래? 진작에 괜찮아진 거 아니었어?"라고 묻는 남편에게 3년이 흐른 이제야 온전히 소화가 된다고 말을 건넸다. 온전히라는 건 소화여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 몸에서 턱 막히는 것이 없고, 숨이 잘 쉬어지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배가 출출해지는 그런 것이다.


희망을 갖고 건강한 생활과 나의 즐거움을 좇다 보니 예전의 소화력을 되찾은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품은 희망은 거대한 바람이 아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낫겠지. 일주일 뒤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일 년 뒤엔 지금과는 분명 다를 거야. 하는 식의 작은 기대감이었다. 그저 한점 희망에 불과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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