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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12. 2023

[에필로그] 자율신경실조증 인간 생존기를 마치며

극심한 소화불량을 시작으로 온갖 증상에 시달리며 약 10개월간 병원쇼핑을 했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몸의 많은 뼈가 드러날 만큼 살이 빠졌지만 숫자로 이야기하는 병원 검사 수치로는 늘 '정상인'이었습니다. 돌고 돌아 뇌신경센터를 방문하여 '자율신경실조증'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의식하지 않는 정상적인 소화가 되기까지는 약 3년이 걸린 듯싶습니다.


투박한 말로 적어놓은 투병 일기와 흐트러진 기억을 더듬거리며 그 당시 마음과 생각과 느낌을 다시 건져 올렸습니다. 투병기이자 회복기, 에세이이자 자전적 기록과 같은 정체성 모호한 이 글들이 저 스스로에게 위로와 치유가 되었기에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을 거둔 기분입니다. 마음이 후련해졌고, 진짜 내 모습에 대한 내면 여행을 하게 된 것 같아 나와 더 친해진 느낌마저 듭니다.  


많은 사람이 크게 아프고 난 후 삶에 대해 깨닫는 것들 가운데 공통된 것은 바로 '감사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당연히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

그저 숨 잘 쉬며 하루를 잘 보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기는 뿌듯함.

별것 아닌 것에 잠 못 자며 마음 쓰던 것들이

이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무 심한에 대한 고마움.


행복은 인간을 어린아이로 만들고, 고난은 인간을 철학자로 만든다는 누군가의 말이 아무래도 맞는가 봅니다. 이제는 시련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기로 했습니다. 시련이 닥쳤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차곡차곡 쌓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데 애쓰기로 했습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기본 건강수칙을 잘 지키며 내 건강과 나를 1순위에 두고 살기로 했습니다.


몸이 아픈 시련은 마음도 잡기 힘든데 몸의 증상까지 잡아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었기에 회복이 되었습니다. 평생완치는 안된다는 의사의 말보다는 그래도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믿었습니다. 그 희망은 거창한 바람이 아닌 그저 오늘보다 조금 나을 수 있는 한 점의 희망이면 충분했습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에도 그랬습니다. 희망이 사라지니 살고 싶지 않아 졌고 회복될 수도 있을 거란 흐릿한 점과 같은 희망이 생기니 살고 싶어 졌습니다. 희망 유무의 경계선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한 점의 희망을 기어코 발견했다면 그건 죽음에서 삶으로 이동하는 원대한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삶으로 이동한 발걸음이 또 다른 점들의 희망을 찾아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죽음의 경계에서 아주 멀어지자 저는 어느덧 회복이 되어있었습니다.


저처럼 어디선가 돈다발 들고 병원쇼핑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한점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율신경실조증 인간 생존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이지만 다양한 증상으로 인해 비정상인과 정상인 길에서 헤매시는 분들께 하나의 사례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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