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by 한울 Hanul

남들보다 빨리 대학에 가고,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나오고, 남들보다 빨리 성과를 내면 이를 앞서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앞서있다는 말에 대한 전제는 그 상대방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 비해 이루어내고 성공이라 생각하는 길에 발을 들인 것이 빠르기 때문에.


앞서있다는 것은 언제나 비교 속에서만 성립한다. 누군가가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면 단지 잘됐구나 인정하고 끝내면 되는데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며 비교한다. 그러니 사실 앞서 있다는 건 허상이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확확 바뀌는 상대적인 비교가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을까. 이른 성공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는 법이다.


"나는 뒤처진 건가?"

"나는 늦어버린 건가?"


앞서 있는 사람이 있으면 뒤처지는 사람도 있다. 빠르게 착착 나아가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 격차가 적당히 멀면 좋을 텐데 따라잡을 수도 없이 아득해 보일 때 사람은 자신을 실패자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인데. 누군가 빠른 순서대로 줄을 서라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가장 빛나 보이는 사람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뒤처졌다고 느끼며 불안해한다.


그러니 앞서 있다는 감각도, 뒤처졌다는 생각도 사실에 가까운 실체라기보다는 착각에 가깝다. 누군가의 삶을 단편적으로 들여다보고 스스로 불러온 불안과 착각. 삶에는 결승선이 없는데 우리는 자꾸 순위를 매긴다. 심지어 그 기준은 엄청 쩨쩨해서 금메달이 아니면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군다. 금메달은 하나고 그 뒤의 선수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우승 하나에만 집착한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다른 선수들이 그동안 지내 온 노력과 시간은 다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불합격, 실패, 넘어짐, 떨어짐.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이 단어들의 속뜻은 '끝'이 아니다. 한 번 멈추고 넘어졌다고 해서 뒤처진 것이 아니듯, 실패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무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18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초반에 넘어졌음에도 올림픽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1등으로 들어온 것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너무 많이 접하고 들어서 지루하기까지 한 이 문장은 틀리지 않았다. 실패는 곧 경험이고 단단한 성공의 기반이 된다. 이른 나이에 얻는 성공은 무척 좋아 보인다. 앞으로의 여정이 무척 순조로울 것처럼 보이고 잠시 삐끗한대도 스스로 정비할 시간이 충분할 테니 얼마나 좋아 보일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정말 시작이 조금 일렀다고 해서 그 뒤가 탄탄대로이기만 할지. 너무 이르게 도착한 자리에는 아직 스스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과 고난이, 원치 않았던 기대와 부담이 뒤따른다. 그리고 경험이 부족한 만큼, 순진한 새내기를 꾀어내고 꼬드기려는 악독한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자신을 뒤처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개 다른 이들과 나를 너무 충분히 비교해 본 이후나 실패를 바로 마주한 직후다. 시야가 좁아지기 일쑤일 때. 나 자신을 포용하고 감정과 결과의 원인을 돌아볼 여유를 잃는다. 여차하면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는 자신과 지난날의 후회를 마주해 버릴지도 모르니까. 가장 잘 이해하고 안아주어야 할 대상이 내가, 실은 아주 무능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차라리 편안한 방법을 선택한다. 가혹하고 잔인하지만 무척 단순한 방법, 자기혐오다.


"이미 늦었어."

"다 내가 부족한 탓이야."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

"나는 안 되나 봐."


이런 생각들은 현실을 분석해서 나온 정설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해쳐서라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낸 극단적인 사고에 가깝다. 눈앞에 절망을 목도했으니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빛보다, 다듬지 못한 원석보다, 이미 해지고 잃어버린 것에 더욱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대신 반대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한, 길이 사라진 건 아니지 않은가?


앞서 있다는 건 생각보다 허상에 가깝고 살아남아 지속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일은 늦었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에 따라잡겠답시고 무리한 속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일이다. 금메달을 이루어낸 소수의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과 같은 속도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다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두 번 넘어지는 게 꿈이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다.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가능할 거라는 가능성도 다수의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과한 독기는 자신을 갉아먹는다.


'넘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것.'이 문장에 필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다시 일어날 때 조금 현명하게 일어나면 좋지 않을까. 무작정 악으로 깡으로 다시 뛰기엔 여린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잘만 일어났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등의 탓하는 말 따위로 핍박하고 싶진 않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최상의 성공 비결이 아니라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적당함을 찾는 것이다.


일어난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나를 파괴하지 않는 일이다. 넘어지더라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도록, 준비운동도 하지 못해 발이 꼬이거나 신발 끈을 제대로 묶지 않아 넘어지지 않도록.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앞서나가겠다는 허상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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