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5.
#목소리를드릴게요 #정세랑 #소설집
사진 찍어놓은 걸 보니 다섯 번에 걸쳐 완독한 듯하다. 단편집의 장점이자 단점. 나는 이렇게 뚝뚝 끊기는 단점이 더 와닿아 장편소설을 좋아라 했다.
이 책은 참 다양한 장소와 시간대에 읽은 것 같다. 어느 챕터는 산에서, 강에서 접하기도 하고, 어느 대목은 오전에, 저녁에, 잠이 오지 않는 불면의 시간에 만나기도 했다.
이제껏 단편집은 책을 덮으면, 너무 많은 장르와 내용들이 한꺼번에 뒤덮여 오히려 하나도 오롯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작가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엮었다지만, 그런 작가 개인의 생각이 독자인 나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그런데 정세랑은 노련했다. 그녀는 아마 작가가 되기 전 무수히 평범했던 한 명의 독자였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욕심보다는 독자의 시선에서 엮은 느낌. 마치 가수들이 앨범낼 때 하나의 주제 안에서 인트로, 타이틀의 밸런스와 노래 순서 등을 신경쓰는 것처럼. 이 책도 하나의 앨범같았다. 그런 세심함 덕분에 책을 덮고도 하나의 큰 흐름과 장르 속에 때론 아주 짧고, 혹은 조금 짧은 단편들이 하나 하나 모두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또 이 소설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과 가장 최신작 사이의 간극이 8년이라는 평론가의 이야기를 듣고, 정세랑의 세월에 굴하지 않는 대쪽같은 스타일에 한번 더 감탄을 머금었다.
SF라는 장르적인 일관됨도 있지만, 그녀의 스타일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건. 그녀의 시선이다. 정세랑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현실에 상상을 덧대는 평범한 방법과 달리 상상 속에 현실을 집어넣는 방법은 가히 파격적이었으며, 의도한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수박 겉햝기 정도로만 그 현실적인 문제들을 흝고 가는 느낌도 들었다. 일부러 가볍게 다루려는 느낌. 단편의 속성인건지, 아님 너무 꾸짖으면 아예 보지 않을 인간의 본성을 고려한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똑똑하면서도 따뜻하고, 대쪽같으면서도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전에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심시선이 현존인물이 아닌 것에 한탄했는데. 내가 틀렸다. 이제부터 정세랑의 팬이 되기로 했다. 그녀의 자취가 남은 기록들을 따라가고, 앞으로 남길 기록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