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자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제법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왔고, 어떤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를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가까워질수록 망설인다.
언어장애로 인해 대화는 늘 쉽지 않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먼저 맞춰주려 한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상대가 추측해서 먼저 말해버리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어색한 공기가 가득해진다. 대화를 이어가려면 상대가 더 많이 말해야 한다. 그게 미안하다. 그래서 점점 말수가 줄어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상대도 편할까 싶어서, 그렇게 점점 더 입을 닫게 된다. 이 상황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빨리 걷지 못한다. 함께 걸을 때면 상대는 내 속도에 맞춰야 한다. 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나는 의식한다. 불편하지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나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도 불편해진다. 그들은 괜찮다고,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미안해진다. 괜찮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더 위축된다.
노래방, 방탈출, 오락실 같은 곳을 갈 때도 나한테 물어본다. 내가 불편하지 않을까 해서. 나는 그 배려가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나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된다. 모두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텐데, 나를 배려해서 포기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고 미안해진다. 나도 고민 없이 "좋아, 가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엔 "나는 괜찮아, 너희 가고 싶은 데 가"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빼놓고 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다. 계단을 오를 때, 음식을 나를 때, 문을 열 때조차도. 나는 항상 누군가의 손길을 받는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작아진다.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무력해진다. 하지만 나도 주고 싶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다. 친구가 힘들 때 위로해 주고 싶고,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든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것. 그게 가장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피한다. 일부러 혼자인 척, 어울리기 싫은 척, 관심 없는 척한다. 먼저 다가오려는 사람들에게 벽을 친다. 혼자가 편하다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하지만 사실은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어울릴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혼자가 된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웃고 떠들고, 무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다. 하지만 함께할수록 나는 더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점점, 그 법을 더 능숙하게 익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