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그래왔지만, 요즘은 더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눈을 뜨기도 싫고, 몸을 일으키는 것도 버겁다.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아, 또 하루가 시작됐구나."
사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나 장애가 그렇다.
사건도 많았고, 드라마도 많았다.
그래도 결국엔 다 거기서 거기였다.
힘들다고 투정 부릴 틈도 없었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봤자
아무도 제대로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공감해줄 사람도 없고,
건성으로 끄덕이다 말 거였다.
그러니까 그냥, 팔자라고 생각했다.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안고 살았다.
살아야 하니까.
숨 쉬듯이, 짐도 같이 끌고 다니는 거다.
익숙해지면 좀 낫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무거운 건 그대로다.
다만 이제는 그 무게를 느낄 힘조차 없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조차도 가끔은 잊고 산다.
당연한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래서 더 힘들다.
누구도 모른다.
나도 가끔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는지.
엄마는 올해 여든여덟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엄마, 이거 오른쪽이야."
"뭐라카노?"
"오른쪽이라고!"
"뭐라꼬?"
처음에는 참는다.
두 번, 세 번쯤은 괜찮다.
근데 네 번, 다섯 번 넘어가면 목소리가 올라간다.
나도 안다.
엄마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
몸이 늙으면 귀도, 머리도 다 같이 늙는 거라는 거.
물론, 근본 원인은 내 발음이 안 좋아서다.
그래도, 젊으실 때는 눈치껏 잘 알아챘다.
지금은 그게 잘 안 된다.
게다가, 엄마는 이상하게도 내가 말하는 내용에는 신뢰를 잘 붙이지 않는다.
같은 얘기를 형들이나 누나가 하면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내가 하면 대답도 시원치 않고, 대꾸도 잘 안 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서운함과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몸이 불편해서 짜증 나는 것도 있는데,
마음까지 그렇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 때는 더 견디기 어렵다.
머리로 아는 거랑 마음이 따라가는 건 다르다.
짜증이 난다.
말하고 또 말하고, 겨우 알아듣고, 또 까먹고, 또 말해야 한다.
반복된다.
짜증 내고, 미안해하고, 후회하고, 다시 짜증내고.
끝도 없는 원이다.
그냥 하루가 그런 식으로 간다.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 소리도 없는 곳에 가고 싶다.
아무 대답도 필요 없는 곳.
누가 나한테 뭘 요구하지도 않고,
내가 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런 데 가서 그냥 조용히 있고 싶다.
근데 그런 데는 없다.
나가면 또 세상이 있고, 또 사람들이 있다.
숨 쉴 틈도 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냥 집에 남는다.
답답한 이 집 안에 갇혀서,
숨도 못 쉬면서 또 하루를 버틴다.
게다가 요즘은, 손까지 다쳤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이게 또 별거다.
왼손으로 겨우겨우 해오던 것들이,
이제는 단순한 일조차 몇 배나 더 힘들어졌다.
양말 하나 신는데 시간이 두 배로 걸리고,
컵 하나 들 때도 조심조심 움직인다.
손 하나 제대로 못 쓰는 것뿐인데,
사는 게 전체적으로 비틀거렸다.
몸도 마음도, 더 허약해졌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회사에 간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출근길은 더 힘들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사람이 벽처럼 몰려든다.
좁은 칸 안에서 숨이 막히고,
어깨가 부딪히고, 사람들 틈에 끼여서 꾸역꾸역 밀려가야 한다.
버티다 못해서, 가끔은 그냥 택시를 잡는다.
과천에서 성수까지, 한참 걸리는 길.
택시비가 눈물 나게 나온다.
그래도 그냥 돈 주고 편하게 가는 걸 택한다.
몸이 먼저 무너질 것 같아서.
회사에 가면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린다.
일은 예전보다 훨씬 힘들다.
머리는 계속 굴려야 하고,
몸은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AI가 다 해먹는다.
몇 년, 몇십 년 쌓아온 내 경험, 내 노하우, 내 감각들이
한순간에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걸 본다.
"AI가 더 빠릅니다."
"AI가 더 정확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내가 해온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억울하고, 화나고, 허탈하다.
그래도 참고 일한다.
월급을 받으려면 참고 견뎌야 한다.
어쨌든 고액연봉이라면서 주변에서는 부러워하지만,
나는 별 느낌이 없다.
통장에 돈은 찍히는데,
나가는 돈도 그만큼 많다.
엄마 병원비, 택시비, 카드값, 잡비...
그러다 보면 남는 것도 없다.
"나는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만 자꾸 든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 집에서는 또 엄마다.
"밥 묵나?" × 10
"그거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 × 5
...라는 말만 반복한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똑똑한 AI를 상대하고,
퇴근하면 말귀 잘 안 들리는 엄마를 상대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내가 낸 소리에 내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속은 엉망인데도,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행복한 사람처럼 해맑게 웃는다.
다들 그런 줄 알겠지.
괜찮은 줄 알겠지.
힘든 거 티 내봤자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아무도 몰라준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괜찮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그냥 나는 살아 있는 거고,
살아 있으니까 계속 일하고,
일하니까 돈 벌고,
돈 벌어서 집에 오면 또 엄마를 챙긴다.
누구라도 나한테
"힘들겠다"고 한마디라도 해주면 울어버릴 것 같지만,
그럴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냥 속으로 삼킨다.
삼키고, 또 삼킨다.
손가락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다.
그냥 아프다.
근데 아무것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또 하루를 넘긴다.
하루하루가 버티기의 연속이다.
아무 기대도 없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거.
그런 건 오래전에 버렸다.
그냥, 오늘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곳도 없다.
친구도 없고,
가족한테는 힘든 티를 절대 내지 않는다.
괜히 걱정할까봐.
그래서 결국,
세상과 단절된 내 작은 방만이 유일한 도피처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안도감 하나에 기대어 겨우 버틴다.
그저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멈출 용기도 없고, 끝낼 힘도 없으니까.
사는 게 아니라, 겨우 이어가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