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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익숙하고, 허기지다

by 돛이 없는 돛단배

나는 친구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친구로서의 효용가치가 없다.

발음이 좋지 않아 대화가 종종 끊기곤 한다.

상대는 다시 묻거나 애써 알아듣고 넘어가지만,

그 순간의 어색함은 늘 내 몫으로 남는다.

몸 또한 불편하다.

누군가와 함께 어딘가를 가거나 무언가를 함께하는 일에 있어

나는 번번이 부담이 된다.


함께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멀어지는 일에는 이제 익숙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밥 한 끼 하자”는 말, “술 한잔 하자”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간다고 해서 반가워할 사람이 있을까

늘 그 생각이 먼저 앞선다.

거절당하는 일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익숙함은 상처가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 먼저 술자리를 제안하면

그때 조용히 따라나서는 것,

그 정도가 내가 맺을 수 있는 관계의 최대치다.


연락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가 연락을 해오면 간단히 응답은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건,

나와 어울리고 싶지 않거나,

애초에 나를 떠올릴 일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저 조용히 연락을 끊는다.

서로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데 큰 소란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먼저 연락해오는 사람은 나의 안부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개발 중 막힌 문제가 생기면,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조차 불쑥 연락을 해온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고,

끝에는 “나중에 술 한잔 하자”고 덧붙인다.

그러나 그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다.

이후의 연락 역시, 또 다른 필요가 생겼을 때에만 이어진다.

‘그때 보자’고 했던 술자리는 영영 오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 연락을 더 이상 열어보지 않게 된다.

읽고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택한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거절의 방식이다.


얼마 전, 문득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고 싶었다.

혼자 가기엔 테이블도 크고, 양도 많았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글을 올렸다.

‘함께 식사해주실 분, 시급 지급합니다.’

그렇게 동행을 돈으로 사서

잠깐 함께 밥을 먹었다.

한 번 만나는 관계일 뿐이지만,

나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한다.

상대는 감동을 받았다고 하고,

내 이야기가 동기부여가 많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없다.

동행은 짧았고, 마음엔 오히려 더 큰 허기가 남았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왜 먼저 연락하지 않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내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괜히 먼저 연락했다가

“바쁘다”는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나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 말이 진심인지, 거절인지, 귀찮음의 표현인지

끝내 알 수 없어

결국 스스로를 탓하고, 멀어진다.


그래서 아예 연락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고,

실망하지 않으면 상처도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다.

오래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친구가 없다는 건

어떤 날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속이 허전하다.

누군가의 짧은 안부,

“밥은 먹었어?” 같은 말이

이제는 낯설고, 어색하다.


혼자라는 것이 편한 건 아니다.

다만, 덜 아플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대지 않고,

기다리지 않으며,

그저 조용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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