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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는 것

by 돛이 없는 돛단배

나는 걷는 게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걸을 때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몸이 조금씩 흔들린다.

손에 컵을 들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해서 경직된다.
작은 진동 하나에도 중심이 흔들릴 것 같은 느낌. 그 순간은 늘 위태롭다.
특히 머그잔처럼 뚜껑도 없고 무게중심이 애매한 컵은 더 어렵다.
몇 걸음 가지도 못해 잔이 기울고, 안에 든 액체가 출렁이고, 결국은 쏟는다.
그래서 그런 일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게 된다


그래도 예전엔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1회용 컵이 있었기 때문이다.

뚜껑이 닫힌 테이크아웃 컵은 내게 작은 안전장치였다.

흔들려도 넘치지 않고, 손에 쥐고 자리까지 옮기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조심조심 자리에 앉아서, 눈치 보지 않고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시간.

그건 내게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컵이 사라졌다.

매장 내 1회용 컵 사용 금지.

환경을 위한 정책이라는 설명은 납득이 갔다.

하지만 내게 그 말은 곧, “이제 너는 카페에 앉지 마”로 들렸다.

이제는 머그잔을 직접 들고 자리까지 가야 한다.

그건 내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카페는 다시, 나와 상관없는 공간이 됐다.


그러다 어느 날, 중고거래 앱에 물건을 올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물건뿐 아니라 도움도 주고받잖아.

나도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부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카페에서 만나, 내가 주문한 커피를 자리까지 가져다줄 사람.

부담이 없도록 커피나 디저트를 사드리거나, 소정의 알바비를 드리는 식으로.

글은 금방 썼다.

내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조건도 담백하게 적었다.

지나치게 부탁하는 어조가 되지 않도록만 조금 신경 썼다.


그리고 실제로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내 사정을 이해해주셨고,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자리에 먼저 앉아 있었고, 그분은 내 커피와 케이크를 받아다 주셨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 간 알바비를 건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정말 오랜만에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흔들리지 않고, 머그잔을 앞에 두고 천천히.


그게 전부였다.

그저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이다.

하지만 며칠 뒤, 그 글이 신고로 삭제됐다는 알림이 왔다.

신고 사유가 뭔지 처음엔 몰랐다.

알바 구인글이 아니라는 사유와 ‘역할대행 위반’이라는 운영정책 때문이란다.

정해진 서비스 외의 일을 대가를 주고 부탁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누굴 고용한 것도, 누군가를 이용하려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커피를 테이블까지 옮기는 걸 도와줄 손길 하나를 구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될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아닌 일.

너무 사소해서 말할 필요도 없는 일.

그런 게 나한텐 자격 심사를 받고, 돈을 써야 하고, 규칙 위반까지 의심받아야 하는 일이 된다.

그 간극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납득은 되는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테이크아웃 컵을 손에 들고 카페 밖에 서 있다.

뚜껑이 닫힌 채 손에 쥐어진 컵.

에어컨 바람이 안에서 흘러나오고, 사람들 대화 소리가 유리창 너머로 들린다.

나는 그 안을 바라보며 멀찌감치 서 있다.


그리고 문득 든다.

왜 나는 이 아무것도 아닌 걸 혼자 할 수 없을까.

왜 단지 커피 한 잔을 자리에서 마시고 싶다는 이유로 돈을 써야 하고,

그마저도 누군가에게 거절당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나는 안간힘을 쓰고, 조심스럽게 부탁하고, 결국 시스템에 막혀 넘어진다.


그럴 때마다 점점 더 분명해진다.

이건 커피 문제가 아니다.

이건 그냥 내 인생이 원래 이렇다는 얘기다.

뭔가 해보려 하면 꼭 어딘가에 걸리고,

도움을 받으려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고,

아무리 예의를 지켜도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느끼고,

그럼 또 나는 조용히 사라져야 하고, 설명도 들을 수 없다.


참, 내 인생.

이렇게 서럽고, 이렇게까지 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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