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아이들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괜히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아주 오래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된 감정이다. 아이들이라는 존재에게 받은 상처는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들은 웃었다. 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 걸음걸이를 흉내내고 어눌한 말투를 따라 했다.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재미있고 신기했을 뿐이었겠지. 어린아이였으니 복잡한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가졌고, 본능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숨김이 없기에, 더 날카로웠다.
그 순간, 나는 그들 앞에서 낯선 대상이 되었다. 비정상처럼 느껴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처음 느낀 건 두려움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에 가까운, 벗어나고 싶다는 감정.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치심이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들은 내 흉내를 냈다. 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말투까지 따라 하며 웃었다. 장난처럼 보이는 행동들이었지만, 반복되면서 내 안에 하나둘씩 쌓여 갔다. 나는 점점 작아졌고, 아무 일도 없는 척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돌아선 뒤에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조금 나았다. 또래 중 나를 놀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대해줬다. 그런 무심한 일상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그 작은 균형이라도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실을 벗어나 혼자가 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표적이 됐다. 그래서 하굣길엔 언제나 조용한 뒷골목을 골랐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 길이 더 편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고, 특히 아이들의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빛은 솔직하다. 놀람, 의문, 불편함 같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른들은 예의를 배워 그걸 감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 솔직함이 내겐 벅찼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치던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겐 오래 남는다. 그때 나는 내가 세상에 어긋나게 태어난 사람처럼 느꼈다.
그렇게 수치심은 아무 말도 없이 다가왔다. 조용히 마음 안쪽을 긁었다. 말없이 웃는 눈빛 하나에 나는 그대로 멈췄고, 또 한 번 작아졌다.
어릴 적 친한 친구에게 아이들을 혼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가 진지하게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더 비참하게 느꼈다.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진짜로 내가 ‘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내 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다 아이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순간이 오면, 지금도 몸이 굳는다. 그 눈빛은 해맑지만, 칼처럼 꽂힌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그런 시선을 마주하면 더 초라해진다.
그래서 낮에는 될 수 있으면 외출을 피한다. 아이들이 밖에 있는 시간이면, 편의점 하나 들르는 것도 망설여진다. 아이들의 발소리와 웃음은 지금도 내 마음을 긴장하게 만든다. 그 들뜬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이유 없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는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순수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순수함이 내게 상처를 줬다. 그들은 몰랐고, 그래서 죄책감도 없다. 나는 용서할 대상이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 미워할 수 없어서 결국 나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때 더 당당했더라면, 그냥 웃고 넘겼더라면, 아니, 그런 상황 자체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이어지는 자기비난. 그리고 그 아래 쌓여 있는 무력감.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게 만들었다. 수치심은 그렇게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