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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글..

by 돛이 없는 돛단배

나는 마흔여덟이다.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학교를 다녔고, 일반회사에서 일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들으면 "그래도 잘 살아오셨네요"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 속의 '그래도'라는 단어가 늘 낯설다.

나는 ‘그럼에도’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냥 살아야 했기 때문에 살았고,
버텨야 했기 때문에 버텼다.

남들처럼 보이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잘못하면 ‘그래서 그런가 봐’라는 시선을 받지 않으려
늘 스스로를 단단히 조이고 살아왔다.
감정보다는 태도를,
느낌보다는 눈치를 먼저 살피며 지낸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은 안으로만 쌓였다.
말할 수 없고, 흘려보낼 틈도 없고,
참는 게 익숙해진 만큼, 풀어내는 법은 서툴렀다.

그래서일까.
어떤 날들은 마음이 막혀서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잠깐이라도 감정이 풀리는 무언가에 기대곤 했다.
크게 해롭진 않지만, 나만 아는 방식으로.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만큼 조용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그 순간은, 잠깐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위안처럼 다가왔다가, 금세 공허함이 다시 자리를 채웠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지면서도 두려워졌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묻어버린 감정들이
어느 순간 내 삶을 잠식해버릴까 봐.

그래서 나는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해결책을 배우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누군가에게
지금 내 마음을, 살아온 시간을,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다.

누군가가 조용히,
“그랬구나” 하고 말해주기만 해도
이 가슴속의 눌림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그런 기대 하나로 용기를 냈다.

사실 이렇게까지 살아온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누구보다 자주 자신을 의심했고,
노력하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늘 따라다녔다.

일상 속 곳곳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함,
출퇴근길의 시선, 계단 하나, 문 손잡이 하나조차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이 쌓여서
지칠 틈 없이 나를 깎아갔다.

회사에서는 늘 미안함이 앞섰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수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잘하고 있는 걸까’보다 ‘폐 끼치진 않았을까’가 먼저 떠올랐다.
별말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였지만,
속은 늘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때때로,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잊었겠지만,
나는 며칠이고, 때로는 몇 년이고 그 말을 품고 살았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내는 것’ 사이에서
늘 어딘가 가시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너무 고요해서
내 존재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고단해졌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삶을 돌아보면
나름대로는 잘 버텨왔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내일 끝이 온다고 해도
크게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담담히,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살만큼은 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 시절을 충분히 지나온 사람으로서
어떤 막이 천천히 내리는 것을
그냥 조용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바람은 있다.
누군가와 따뜻한 말을 나누고 싶고,
한 번쯤은 나 자신으로 편하게 살아보고도 싶다.

이 글은 거창한 고백이 아니다.
그저,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한 번쯤 조용히 꺼내보고 싶었던 사람의 기록이다.

나는 조용히,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말해본다.
“이게, 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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