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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켜진 집의 문턱

by 돛이 없는 돛단배

오늘은 모처럼 비좁은 지하철을 타고 일찍 퇴근했다. 퇴근시간이라 발 디딜 틈조차 없었고, 사람들의 어깨와 팔꿈치에 밀려 칸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눅눅한 공기 속에서 섞여 떠도는 냄새들이 코를 스쳤다. 그나마 차갑게 내려앉는 에어컨 바람이 잠깐씩 숨을 돌릴 틈을 주었다.
손잡이를 잡은 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렇게 힘들게 돌아와도, 집에는 곧장 들어가고 싶지가 않다.

엄마가 깨어 있는 집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건 ‘밥 묵나’라는 소리다. 그 말이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듣기 싫다. 시도 때도 없이, 습관처럼, 기계처럼 반복된다. 그리고 연세가 들수록 위생 개념이 무너져서, 차려줘도 숟가락을 대기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요즘은 거의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간다. 아무리 이래라저래라 해도, 내 말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다. 그 모든 순간이 피로하게 스며든다.

그래서 오늘도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처럼 국밥집에 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국밥집은 하루를 다 태운 뒤에야 어울리는 곳이지, 저녁이 채 오기 전엔 어색하다.
오늘만큼은 조금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다. 부드러운 조명이 비추는 테이블, 반투명한 잔에 담긴 위스키 한 모금, 낯선 안주와 낮게 깔린 음악. 잠시라도 ‘다른 삶’을 사는 척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간판이 세련된 곳 앞에 서면, 들어가기도 전에 마음이 주저앉았다. 문을 열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그 단순한 행동이, 왜 이렇게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발걸음이 문턱 앞에서 멈추고, 손끝은 이미 돌아서 있었다. 거절당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거부당한 손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30분을 골목골목 헤맸다. 불빛이 번쩍이는 가게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잔 부딪히는 소리, 안주를 집는 손, 서로 기대어 앉은 어깨들. 그 안에 들어가면, 나만 이질적으로 보일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결국 아무 데도 들어가지 못한 채, 길거리 벤치에 주저앉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시간이 벌써 30분이 넘었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종아리를 감쌌다. 땀은 이미 마르고, 피부에는 눅눅한 습기만 남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갔다. 웃고 떠드는 무리,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전화기를 붙잡고 걷는 얼굴들. 그 어느 쪽에도 나는 속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마음은 없었다. ‘밥 묵나’라는 소리를 오늘은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발걸음은 늘 가던 국밥집으로 향했다.
습기로 눅눅해진 간판 불빛, 느릿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육수 냄새가 스며든 공기 속에서 늘 앉던 자리에 몸을 눌렀다. 소주 한 병을 시키고, 김이 피어오르는 국밥을 앞에 두었다. 첫 숟가락을 떴다.

그리고 문득, 서른도 아닌 오십에 이렇게 술친구 하나 없이 혼자 술과 밥을 먹고 있는 내 꼴이 서글펐다. 불이 켜져 있는 집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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