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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May 31. 2024

지하철

어딘가로 갈 때 가까운 거리는 택시로 이동하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땐 항상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교통수단이다.

반면 버스는 장애로 인해 타는 것조차 어렵고, 타자마자 출발하기 때문에 넘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타본 적이 없다.


2년 전 아파트 당첨으로 과천으로 이사 온 후로, 나는 매일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이용한다.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는 1킬로미터 남짓 되는데, 그 거리도 걸어가기 벅차서 택시를 불러서 간다.

올 때도 마찬가지다.


출근 시간에는 사람이 덜 붐비는 새벽에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회사 앞 일찍 여는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반 동안 휴대폰을 보다가 사무실로 올라가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한 시간 반 정도를 지하철에서 보낸다.

다리가 불편한 나에게 이 출근길은 늘 공포와 걱정과 도전에 휩싸인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은 나름 익숙하지만,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은 언제나 새롭다.

특히 지하철이 도착할 즈음이면 사람들은 저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리거나 발걸음을 서두른다.

그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경쾌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나도 저렇게 달릴 수 있다면,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출근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달릴 수 없다. 내 다리는 내가 원하는 속도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하철이 도착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빨리 타려는 마음과,

다른 한쪽에서는 그냥 편안하게 기다리라는 마음이 싸운다.

결국 나는 후자를 선택한다.

서두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지하철 한 대를 보내고 다음 차를 기다린다.


곧 지하철이 도착하는데 느긋하게 걷는 이런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속으로 나도 달려가서 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다는 걸 알까?

아무도 관심없겠지..각자 자기 갈 길도 바쁜데...

아랫층에 지하철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그 전철을 타기 위해 더 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걸 보면서 나는 더욱 천천히 걷는다.

나오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걸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치 일부러 전철 하나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진다. ’나도 뛰고 싶다.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게 출근하고 싶다.’라는 욕망과 ’느긋하게 걷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렇게 여유롭게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도 있으니까.’라는 자기 위안이 충돌한다. 이런 내면의 싸움은 매일 반복된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출근길을 걸으며 나는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한다.


느긋하게 걸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사람들의 표정,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그리고 광고판 한번 훑어주고... 그런 작은 것들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된다. 비록 다리가 불편해 지하철을 놓칠지언정,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런 시간이 주는 여유와 평온함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느긋하게 걸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하철을 놓치더라도 다음 열차가 금방 온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을 이어간다. 비록 느리지만, 나는 나만의 속도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그 느긋한 걸음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여유와 평온을 찾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느긋하게 걷는다.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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