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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May 31. 2024

걸음

오늘도 지하철을 타러 역에 갔어요.

사람들이 가득 찬 만차를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했어요.

잡을 곳이 없으면 바로 넘어질 텐데, 차라리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다음 전철을 기다리며 서있는 것도 힘들지만,

바닥에 앉을 수도 없어서 그저 서 있는 게 최선이었어요.

다행히 조금 덜 붐비는 열차가 와서 앉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어요.

어르신이 제 앞에 다가오실 땐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저는 쉽게 일어설 수가 없어요.

달리는 전철 안에서 비켜주다가 넘어질까 봐

죄송스러움을 무릅쓰고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자리가 몇 없을 때는 아예 앉지 않기로 했어요.

오늘은 차문 바로 옆에 앉을 수 있었어요.

멈출 때까지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면 재빨리 일어나서 나가야 하거든요.

순간의 방심도 저를 넘어뜨릴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저에게는 택시조차도 도전이에요.

바로 앞에 서 있는 택시가 있어도 연세가 많으신 기사분이시면

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까 봐 안 타고 폰으로 콜택시를 불러서 가요.


인도 저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어요.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세 번이나 넘어졌고,

두번은 손가락 하나씩 부러뜨렸어요.


지하철 역을 걸을 때도 항상 불안해요.

막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걱정이 돼요.

혹여나 부딪혀 넘어져서 머리를 크게 다치는 것이 제일 무서워요.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나는 반드시 손잡이가 필요해요.

손잡이가 없는 계단에서는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어요.

내 오른손은 많이 불편하고 왼손은 그나마 덜 불편해서

항상 왼쪽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오르내려요.

그런데 지하철에서는 항상 오른쪽으로 다녀야 하잖아요.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날이면 더욱 난감해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우르르 다니지만,

나는 왼쪽 손잡이를 잡고 오르내려야 해서 반대 방향으로 다녀야 해요.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미안하기도 하고 난처한 상황이 자주 생겨요.


그래서 사람들이 덜 붐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빨리 왼쪽으로 오르내려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주 느린 속도죠..

왼발로만 한계단씩 내려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손잡이가 청소가 안 된 전철역에서는 손이 새까맣게 더러워져요.


이 모든 고충들이 제 일상이지만,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은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요.

매일 작은 도전을 극복하며 저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해요.

비록 힘든 여정이지만,

이 또한 제 삶의 일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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