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 사이

by 돛이 없는 돛단배

나는 몸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언어장애도 심하다.

그래서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평소 자주 마주치는 동료들과는 비교적 편하게 말을 주고받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발음이 분명하지 않아, 상대가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자연스레 쉬운 단어를 골라 짧게 말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다듬어진 문장은 종종 맥락이 부족했고, 감정이 빠진 채 전해지기도 했다.

내가 전하려던 의미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져 상대가 혼란스러워하거나 불쾌해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또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그 뜻이 아닌데…’

이미 엇나간 대화 속에서 내 진심은 전해지지 않았고, 설명을 되풀이할수록 더 초조해졌다.


회사 동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려 애써준다.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할 때도, 성급하거나 불편한 기색 없이 들어주려 한다.

내가 말하는 동안 조용히 기다려주고, 종종 내가 끝까지 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이해해주려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고마움 뒤에는 늘 미안함이 따라온다.

그들의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질수록, 나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위축된다.

말 한마디 꺼내는 일조차 ‘혹시 흐름을 끊는 건 아닐까’, ‘내가 또 수고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무거워진다.

대화 속에서 잠깐의 정적이 흐르기만 해도, 나는 습관처럼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또 내가 불편함을 만든 건 아닐까.’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내 몸도 함께 굳는다.

그 경직된 모습이 상대에게는 마치 내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오해가 생기는 일도 있다.

그럴수록 나는 말을 줄이고, 더 눈치를 보게 된다.

그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부담스러운 존재처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잘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은 실수 하나조차 용납되지 않을 거라는 압박감 속에서, 나는 항상 완벽을 목표로 일한다.

언어로 전달하지 못한 것들을 업무 성과로 메우려는 듯, 두 배, 세 배로 노력했다.

실수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그것만이 내가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방법이라 믿었다.


그 결과 인사평가는 늘 좋았다.

상사들은 내 성실함과 책임감을 인정했고, 연봉도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그런 성과들이 내 안의 미안함을 덜어주진 못했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내 한계를 분명히 느꼈고, 그 한계는 나를 자주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회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이 일은 내 삶의 기반이자,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중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계속 살아남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미안함에 발이 묶이지는 않는다.

언어장애는 분명 나에게 걸림돌이지만, 그렇다고 삶을 멈출 수는 없기에.


어쩌면 나는 동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보다 먼저 눈빛과 기색을 읽는 법, 불편함 속에서도 오해를 감내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약점을 끌어안고 하루를 버텨내는 법을.


나는 오늘도 조용히 일터로 향한다.

잘 알아듣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말 한마디를 꺼내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마음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닌다.

밤이 되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또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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