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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May 31. 2024

혼자 자는 밤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깨닫지 못했다.

다만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나가셔야 했다.

위로는 열두 살 이상 차이가 나는 형이 셋 있었고,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누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일찍부터 공부를 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 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상 집에서 혼자였다.

형들과 누나는 각자의 길을 가느라 바빴고,

나는 그들의 부재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자라났다.

집 안은 조용했고, 때로는 그 고요함이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는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셨고 격주로 낮과 밤 교대 근무를 하셨다.

낮에 일할 때는 비교적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지만, 밤에 일하는 주가 되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밤 근무가 시작되면 엄마는 오후 5시에 집을 나서셔서 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서야 돌아오셨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 없이 집을 지켜야 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가방을 회관 마당에 던져놓고 친구들과 놀곤 했다.

우리는 마을 회관과 근처 논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놀았는데, 그 시간은 마치 현실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졌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더 쓸쓸해졌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혼자서 쓸쓸히 걸음을 옮겨 캄캄해진 집으로 향했다.

그 길은 매번 내게 시험과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길고 어두웠고, 어린 나에게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가득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없는 집은 더욱 적막하고 음산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의 집에서는 엄마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두고 아이들을 맞이했지만, 나에게는 그런 풍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저녁은 늘 허전했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집에 들어서면 맞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어둠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떤 날은 집 앞에 뱀이나 두꺼비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날은 특히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품이 간절히 생각났고, 혼자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는 혼자서 많은 것들을 견뎌내야 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강해져야 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계신지 알기에,

나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마음에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엄마가 없는 밤, 혼자서 집을 지키는 그 시간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기억은 아픈 추억이기도 하지만 나를 성장시키고 강하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가 가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셨는지, 그리고 내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견뎌냈는지를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용감했다고 느껴진다.

홀로 견뎌낸 시간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이루는 중요한 조각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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