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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n 13. 2024

자랑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셨엄마가 공장에 일하러 다니시작하시면서,
저는 10살 때부터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혼자 자고, 혼자 밥을 챙겨 먹고, 준비물도 혼자 챙겨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어릴적부터 흙바닥에 그려가며 익힌 그림 솜씨 덕분에 종종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개근상도 꾸준히 받았습니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큰 사건사고 없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초중고 시절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대구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자취 생활을 시작했고,
2년 동안 나름 열심히 다녀 꽤 높은 점수로 졸업했습니다.
그 후 혼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형, 누나네 집에서 신세를 지다가 어렵게 취직했고,
그때부터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했기에 출퇴근이 힘들 것 같아 고시원에서 지내며 회사에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초년생 때 취직한 회사들은 대부분 영세업체였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을 받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지만, 몇 년간의 다양한 경력 덕분에 처음으로 직원이 50명 이상인 메이저 웹 에이전시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앞 2분 거리에 있는 고시원으로 바로 옮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몇 개월씩 멀리 파견을 나가기도 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연봉이 다른 사람들보다 적었지만, 밤늦게까지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 13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하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며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큰 회사라고 해서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형 프로젝트 하나가 잘못되면서 회사는 어려워졌고, 결국 몇 달간 월급을 받지 못한 채 폐업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며 가끔 면접도 보면서 몇 달을 허비하다 어렵게 취직하게 되면,
취직한 회사 근처로 고시원을 옮겨 쉬지 않고 또다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지 7년 만에, 고시원과 조립식 옥탑방을 전전하던 생활을 마감하고
처음으로 월세 집을 얻어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업무의 고단함을 견디며 최소 1년 반을 버티다 결국 퇴사하고,
몇 달 동안 수십 군데에 지원한 끝에 간신히 재취직해 다시 힘겨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버텨냈고, 견뎌냈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냈습니다.

동료들이 쉬엄쉬엄하라고 말할 만큼, 강제로 휴가를 보낼 만큼 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덕분에 동료 평가에서 매번 좋은 점수를 받아 다른 사람보다 연봉이 빨리 올랐습니다.

일이 힘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을때면,
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연봉을 올려줄 테니 다시 와달라고 해서 다시 돌아가 몇 년간 일했던 게 두 번 있었습니다.
A회사에서 B회사로, B회사에서 다시 A회사로..
그리고 또다시 회사가 어려워져 폐업하게 되어 갑자기 백수가 되었을 때, 이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감사하게도 함께 일하자고 스카웃해주어 현재 회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사는 재미도 잊은 채 오직 일만 하며 달렸습니다.
매일이 고단한 반복이었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많았지만, 혼자 힘으로 잘 살아내고 싶었습니다.
피땀눈물 흘리며 모은 돈에 약간의 은행 대출을 더해 비록 서울은 아니지만 가까운 과천에 마침내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습니다.
여전히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출퇴근시간과 회사 생활은 힘들고 바쁘지만, 친구하나 없지만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누리면서 나름대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힘겨웠던 지난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갈 때면, 그 모든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그렇게 믿으면서, 묵묵히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저는 '그래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후회되는 일도 많지만, 후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다는 점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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