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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l 03. 2024

하루

아침이 밝아오며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빛이 방 안을 채운다. 밉살스러운 해가 또 떴다. 이 반복되는 일상이,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해가 뜨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내 몸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이 살아있음은 기쁨이 아니라, 또다시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밤은 내게 잠시나마 안식을 준다. 어둠 속에서 나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으련만,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뜨고 만다. 이 눈을 뜬다는 행위는, 내게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살아지는 목숨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이 고장난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제한한다. 몸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나를 동정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 시선이 더없이 불편하다.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기를 원할 뿐인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너도 할 수 있어", "희망을 잃지 마". 그러나 그 말들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나의 현실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냉혹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삶이 왜 이리도 무거운지 생각한다. 나의 존재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치열한 싸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싸우며, 사회의 편견과 맞서며, 나 자신과의 싸움도 피할 수 없다. 하루를 견뎌낸다는 것은 이러한 모든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게 살아가니?"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간다.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목숨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만 어떤 알 수 없는 미련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목표가 없이 살아지는대로 살 뿐이다.

밉살스러운 해가 또 떠도, 나는 내 방식대로 이 하루를 견뎌낼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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