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함께’ 살도록 디자인되다.

by 쏭스

북국의 길고 어두운 겨울은 우울을 동반한다. 고작 서너 시간 떠 있다 이내 저버리는 햇빛. 일조량이 이렇게나 무섭다. 눈 이불을 덮어쓴 듯 새하얀 거리와 집집마다 창가에 달아 놓은 별 모양 조명 덕에 그나마 겨울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이의 마음까지 밝혀준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온기와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가 싶다. 애써 마음을 밝히지 않으면 너무 쉽게 쪼그라들기에. 크리스마스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이는 큰 행사가 된 것은, 어쩌면 긴 겨울을 복닥거리며 따뜻하게 보내려는 마음에서 이지 않을까?


물가 비싼 나라에서 생활비도 절약하고, 몸과 정서의 연대를 구축하는 일종의 전략이랄까? 노르웨이에서 알게 된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동거하고 있다. 서로를 보살피는 일종의 사회적 실천인 셈이다. 외려 결혼보다 동거가 더 흔하다. 함께 살아보지 않고 결혼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다. 파트너를 잘 알기 위해서라도 함께 살아보는 수밖에 없단다. 동거를 통해 일종의 생활 동반자적 감각을 습득하게 되는 셈이다.

여럿이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플랫 형태의 주거가 보편적이다. 누군가 큰 집을 임대한 후 방을 쪼개어 플랫 메이트를 들인다. 각자의 방 확보로 프라이버시는 보장받되,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며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주거 형태다. 휴일엔 인근 공원이나 호수에서 함께 여가를 즐기기도 하고 술도 마신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면서도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플랫 메이트를 들이는 일은 중요한 일이 된다. 주로 인터뷰를 통해 까다롭게 들인단다.


내가 살았던 크링쇼 기숙사 또한 6인 플랫 구조다. 철저한 개인주의에 기반한 서양 사회인 줄 알았던 이곳이 외려 더 사람들 간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공공 영역에서 세심하게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저마다 욕실이 딸린 방을 가지되, 함께 사용하는 부엌은 꽤 넓게 디자인되어 있는데, 자연스러운 마주침을 고려한 설계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서로의 요리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의 문화도 알아가게 된다. 이란에서 온 플랫 메이트 아이다 덕분에 샤프란을 넣어 노랗게 물들인 밥과 토마토 가지 요리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가지와 토마토가 이렇게도 조화롭다니 새삼 놀란다. 네덜란드에서 온 엘리는 나의 야채전을 맛있어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루카스에겐 신라면이 매워도 너무 맵다. 물을 연신 마셔댄다. 저마다의 음식과 향신료가 새로운 맛의 감각을 선물한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식성과 음식 DNA를 가졌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부엌은 말로만 듣던 문화다양성을 실로 체험하는 배움터가 된다.


한국은 삶의 공간이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 원룸과 고시원, 쪽방은 저마다의 고립을 부추기고 있다. 허기진 외로움을 먹방과 가족 간의 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으로 대리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나마 영상 속 맛을 진짜의 맛인 양 착각해 본다. 전두엽이 보내는 뇌파로 말이다. 화면 밖 비루한 일상에 눈 감은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새 한국은 외로움과 허기짐의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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