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역시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가던 길이었다. 살면서 당연시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몇 번일까? 스무 살부터 화장은 사회생활의 기본 값이었다. 잡지 부록으로 받은 화장품부터 비싼 외제 화장품까지, 이것저것 섭렵하며 화장술을 익혀왔다. 약속 시간에 늦는 한이 있어도 화장은 해야 했다. 머리 감고 말리기, 기초화장, 선크림, 파운데이션, 파우더, 볼터치, 눈화장, 립스틱까지 전 과정을 마쳐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맨얼굴로 나간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렸다. 한국에서의 나는 적어도 그랬다.
물가 비싼 나라, 노르웨이에 살아야 하니 화장품을 맨 먼저 쟁였다. 아이라이너와 펜슬, 립스틱, 헤어에센스 등 기본 3개 이상. 이곳에 와서 참 곱게도 화장을 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게 기본 값이니까. 십 년 넘게 매일 해오고 있는 당연한 일이니까.
오슬로에 온 지 1년쯤 지났나? 그날도 역시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가던 길이었다. 별안간 팽팽하던 줄이 탁~하고 끊어져 버렸다. 굳이 화장을 해야 하나? 란 회의가 밀려온 것이다. 아침마다 공들여 화장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단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제 서야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블린던 캠퍼스에서 마주치는 여성들 죄다 화장기 없는 얼굴들이다. 왜 그제 서야 보였던 걸까? 대부분 파티나 행사 등 특별한 있을 때만 얼굴에 힘을 주는 정도. 평범한 날인데 얼굴에 힘주는 걸 외려 어색해하는 느낌? 그날부로 ‘과감히’ 화장을 접었다. 눈썹과 입술 정도로 퉁친다. 세상 편하다. 안경에 눌린 콧잔등 자국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이런 건가?
그간 화장하지 않은 나는 진짜의 나가 아니라고, 그러니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맨얼굴 외출은 있을 수 없는 일. ‘화장하는 나’와 ‘화장하지 않는 나’ 사이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었던 걸까?
‘여자라면 당연히’로 규정되는 온갖 것들로부터 벗어난 전복감이랄까? 확실히 전보다 편해졌다. 꾸밈노동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맨얼굴을 선택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성애화된 사회적 기호들로부터의 탈주인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것을 이곳에서 배워버렸다. 일단 아침잠을 더 잘 수 있게 되었고, 갑갑함이 덜하다. 보여주는 내가 당당해지는 건 덤. 참, 한국에서 쟁여 간 화장품들은 결국 다 쓰지 못하고 폐기 처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