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통해 발견한 나의 재능 5가지
재능 없음을 슬퍼하지 말자
퇴사 열풍이다. 유튜브에 ‘퇴사’라고 검색하면 38,000여 개의 영상이 쏟아진다. 퇴사 인증 영상부터 퇴사 성공 후기, 퇴사 실패담까지 다양하다. 이 속에서 퇴사 못하고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가지 못하는 내가 참 지질하고 용기 없는 사람 같다. 그런데 그런 용기가 날 정도로 딱히 하고 싶은 다른 일도 없다.
나는 재능이 없다. 공부도 특출 나게 잘 하지 않았다. 그림은 못 그렸고, 그나마 배운 피아노도 평범했다. 운동은 좋아했지만 운동 신경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특별한 재능 없이 살다 보니 회사일 외에 뭘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교육에 가장 잘 길러진 평범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 잘 듣고, 부모님 말 잘 듣고 크던 아이가 회사에서 직장 상사 말 잘 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시간도 쌓이니 어떻게 IT 분야에서 오래 일할 수 있냐고 칭찬까지 받고 있다. 물론 한 직장에서 19년을 일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회사로만 다녔지만 회사가 아니었으면 못 만났을 좋은 친구와 교육을 받았다. 지금은 견딘 것 자체가 점점 특별해지고 있다. 웃프지만 직장 생활에서 발견한 나의 재능 5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양한 조직 문화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부딪히면서 일하다 보니 생긴 재능이다. 회사에서는 싫은 사람과도 협력해서 일을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회사에서 타 파트장과 크게 싸웠던 일이 있다. 그때 소속 팀장이 나와 그 파트장을 불러서 각자 이야기를 듣고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서로 입장이 다르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감정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자!
수시로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분별심으로 관계가 힘들어질 때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지나니 경험이 쌓이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게 되는 지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아픈 만큼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 때문에 사표를 던졌다면 얻지 못했을 지혜이다.
회사에서 각종 문서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사소한 업무 요청 메일부터 보고서, 품의서, 기획안, 제안서 등 목적 있는 문서를 수시로 쓴다. 직장 상사에게 수없이 보고 하며 잔소리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글을 쓸 때 강박 관념이 생겼다. 가운데 점, 약어 표시, 출처 명시, 맞춤법 검사는 지금도 노이로제이다.
사실 내게 글을 쓰는 취미가 생기기 전까지 직장 생활에서 얻은 것은 눈 밑 다크서클 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몸에 밴 빠른 문서 편집 능력과 보고 받는 사람 관점에서 문서를 작성한 습관들이 내가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지금도 우스개 소리로 얘기한다. '나의 글쓰기 실력의 반은 직장 상사 보고서 쓰기에서 길러졌다.'라고...
지금은 1,000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도 발표를 하고 있지만, 예전엔 남 앞에 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던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이런 사람이 재능과 상관없이 했던 일이 고등학교 정보컴퓨터 과목 시간 강사였다. 신기하게 고등학생 앞에서 컴퓨터 과목을 가르치는 일은 크게 떨리지 않았다.
이렇게 30명, 100명 앞에서 IT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세상에 쓸 모 없는 경험은 없다고 한 게 이런 건가? 나중에 강사 일을 그만두고 회사 일을 할 때에 발표가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다. 남 앞에 서는 일을 통해서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직무 외에도 '비즈니스 스킬',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의 교육 기회가 많았다. 그때는 일도 바쁜데 업무와 상관없는 교육을 왜 시키나 싶었다. 그러나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의 협력을 이끄는 데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교육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큰 조직에 있지 않았으면 경험하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통해서 고생도 많았지만, 리더로서 성장하는 데에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세상에는 혼자보다 서로 협력을 이끌면서 내는 일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길러지는 스킬이 일정관리, 즉 시간관리이다. 프리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회사 일은 일정에 대한 압박이 늘 있다. 정해진 기한 내에 보고하고 업무를 완수하는 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업무이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겪는 주간보고, 월간보고, 연간 계획 수립 등을 통해 목표를 수립하고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은 기본이 된다. 더 나아가 팀장이 되면 개인적인 시간관리를 떠나 전체적인 팀원의 일정관리까지 하게 된다.
알리바바 CEO 마윈은 40대에는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기존에 잘하는 일을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30대에 정신없이 일하느라 마흔이 돼서야 정신 차렸는데, 마윈의 이 말은 내 마음을 울렸다. 사실 뭔가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장점을 더 부각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도 부족한 시간과 체력이다.
나 역시 막연하게 회사 생활을 그만두면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친구가 문득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꼭 그 일을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 해?
친구 말대로 회사를 그만 둘 정도로 내가 이 일에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없는데 내 인생을 거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말마다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고민할 시간에 배워보니 알게 되었다. 취미로 내가 좋아했던 일이지, 일로 하기에는 몰입도가 떨어졌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 맞는 옷이 각기 다르다. 난 직장인이라는 옷이 생각보다 잘 맞았고, 다른 옷이 잘 맞는지는 아직도 조금씩 계속 시도 중이다. 나름 하고 있는 일에서 가슴 뛰는 경험도 하고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럭저럭 안정적인 경제생활도 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요즘의 분위기에서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혼자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함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다. 100세 시대, 불안한 고용 시장에서 우리는 늘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갖자. 인생에 회사 생활만 했다고 해서 Looser가 아니며, 그렇다고 Winner도 아니다. 각자 선택한 삶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기고, 작고 소소한 도전을 통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본인의 재능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찾지 않을까? 그게 당장 내일이 아니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의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니...
직장인이여, 퇴사 못했음을 절망하지 말자!
안절부절못해도 언젠가 우리는 퇴사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