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누우리 Jul 01. 2018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나에게 글쓰기는 '만남'이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그것을 어딘가에는 쏟아내고 싶었다. 그 글이 일기였고 글을 쓰고 나면 맘이 편안해졌다. 내게 글은 치유의 글쓰기였고 기쁨의 저장고였다. 딱히 내 개인적인 삶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고 글은 특별한 사람들만 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내 삶에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일이 생겼다.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인데 어리석게도 그런 일들은 남의 일인 줄 알고 살았다. 내게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인 양 살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2013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 책 3권을 쓸 필요가 있다. '수필, 자서전, 자신의 전문분야' 세 분야의 책이다. 다른 것은 아쉬움이 없는데 전문분야의 책을 못 쓰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다만 아쉽구나.


아버지는 공직에 계시면서 꾸준히 글을 쓰셨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시인에 등단하셔서 수필집과 시집도 여러 권 내시고 자신의 환갑 기념으로 자서전도 쓰셨다. 그리고 은퇴 후에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한 책을 쓰시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조금씩 글도 쓰시면서 준비하고 계셨다. 나중에 아버지 유품의 책을 정리하면서 전문분야의 책 사이사이 메모를 하시고 열심히 공부를 하신 흔적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나에게 책을 꼭 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책 3권은 나에게 인생의 목표로 다가왔다. 내가 미래에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책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왔기에 처음에는 전문분야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쉬울 것 같았다. 내 전문분야를 책으로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서 글 한편 쓰지도 않으면서 책 쓰는 강연만 들으러 다녔다.   


강연을 들을 때는 이렇게 쓰면 되겠다 싶다가 막상 현실 삶으로 돌아오면 일상을 살기 바빴다. 그래도 조금씩 주변에 책을 쓰고 싶다고 말을 하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책 쓰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글쓰기부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논문'이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과 함께 3~4 페이지 짧은 논문을 작성해서 업무에서 얻은 지식을 정리해서 '학술대회'에 투고를 했다.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 '학술대회' 논문집으로 엮어서 책으로 나오니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일하면서 생긴 노하우를 글로 정리하니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글이 되었다. 이 과정이 신기했다. 그저 날 소진시킨다고 생각했던 일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취미로 논문도 쓰는데 학교에서 논문을 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과정도 진학하게 되었다.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리에 들어오면서 또 변화된 삶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지혜를 구하기 바빴다. 그러나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니?'라는 말을 듣기 쉬웠다.


듣는 친구도 같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한 말이었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얘기 꺼낸 내가 더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책은 달랐다. 화가 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관련 책을 조용히 읽다 보면 지혜도 생기고 복잡했던 내 마음도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책 읽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에 우연히 나간 독서모임이 있었다. 여기에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했을 때 우연히 손을 들고 시작한 계기로 주 1회 글쓰기를 33주 차 계속하고 있다. 이 모임의 규칙은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매주 일요일 밤 11시 59분까지 올리는 것이다.   


그 주에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써서 올리다 보니 어느덧 직장분야, 수필(영화/강연/여행 후기), 전문분야(IT보안)의 글들이 조금씩 모이고 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돼서 쓰다 보니 페이스북 '브런치를 읽다', 다음카카오 채널, 다음 포탈 메인 노출도 되면서 글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를 정리해서 공유하면서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고 나누는 삶이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너무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빨리 책을 쓰라고 조언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물론 너무 감사하고 좋은 말씀이다.  


하지만 나는 조급하지 않다. 지금도 글을 통해 내가 치유되고 나누는 삶이 너무 좋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동생의 소개로 세바시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까지 듣게 되었다. 사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았다. 그저 강원국 작가님을 만나서 그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그 무엇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글쓰기 전, 글쓰기 후의 삶을 말한다면, 글을 쓰면서 내 삶이 하나하나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만남'이다.  


나 자신과의 만남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리운 아버지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업보안, 함께 잘해야 살아남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