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신경학자가 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이번 여름휴가에 꼭 맘 잡고 읽어봐야겠다는 책이 있었습니다. 평소 너무 두꺼워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시작할 엄두도 안 났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입니다. 이 책은 뇌신경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기묘한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도 몰랐던 세계였으니까요. 신체적 기능은 모두 정상이지만 뇌신경의 문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제가 그동안 알고 있는 일들은 단편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기억 상실, 시각 상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신체 마비, 자폐증 등 정도입니다.
이 책의 저자 '올리버 색스'는 단순히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이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병과 맞서 싸우면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저자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경외감으로 담아낸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어갔습니다. 24가지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제 마음을 울린 이야기 3가지를 간략하게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P선생은 뛰어난 성악가로 명성 있는 음악 교사입니다. P선생은 어는 날 갑자기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의 눈은 이상이 없었지만 시각을 인식하는 뇌 부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길가다 소화전을 보고 아이들을 본 것처럼 행동하고, 가구의 장식을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가 아무 말이 없어서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아내의 얼굴을 모자로 착각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질병(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의 퇴행)으로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그였지만 음악을 흥얼거릴 때에는 달랐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에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음악에 맞춰서 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면의 음악'이 멈추면 그는 당황해서 행동을 멈추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저자는 잃어버린 시각 능력을 음악이 대신하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가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상실했지만 음악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모습에 인간의 또 다른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P선생은 질병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고 합니다.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비트겐슈타인
20대 후반의 평범한 삶을 살던 크리스티너는 어느 날 갑자기 복통으로 병원에 가게 됩니다. 진찰 결과 쓸개돌이 있으니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수술하기 전날 병실에서 그녀는 아주 나쁜 꿈을 꿉니다.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듯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몸이 정말 사라진 것입니다. 척추에 마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몸을 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는 우리 몸에 '고유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몸의 감각에는 시각, 평형기관(전정계), 고유감각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모두 협조해서 기능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너는 이 중 고유감각을 상실한 것입니다.
'고유감각'은 우리가 우리의 몸이 자기 고유의 것임을 인식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우리의 팔과 다리를 보지 않아도 우리 몸임을 인식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티너는 갑작스러운 척수 염증으로 이 고유감각을 상실했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신기하게도 한 기능을 상실하면 나머지 다른 기능을 통해 보충하게 된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너는 이 사실에 용기를 얻고 잃어버린 고유감각 대신에 시각을 이용해 절망적인 상황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시각적으로 보면서 움직이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한 것입니다. 식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사를 하다가 주의를 딴 곳으로 기울여야 하는 경우, 손톱에 피멍이 들 정도로 나이프와 포크를 꽉 쥐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떨어뜨리는 일들이 생기니까요.
이런 훈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몸이 없는 느낌을 평생 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하나 보면서 움직이는 동작은 아무리 훈련해도 여전히 부자연스럽습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본다면 어쩌면 느린 그녀의 행동에 답답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이 무시무시한 병마에도 좌절하지 않고 싸워 이겨낸 그녀의 이야기를 안다면 다르겠지요.
쌍둥이 형제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기억력으로 쌍둥이 형제는 쇼에도 출연합니다.
"어떤 날이든 말해보세요. 언제라도 괜찮아요. 4만 년 전이든 후이든 상관없어요."
누군가 몇 년 몇 월 며칠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면 형제는 그 날이 무슨 요일인지 거의 순간적으로 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쌍둥이 형제는 기억량이 매우 방대해서 300자리 숫자 혹은 과거 40년간에 일어난 수천억이 넘는 엄청난 양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머릿속에 담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형제들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그냥 볼뿐입니다"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형제들을 관찰하다가 특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종의 게임을 하듯이 두 형제는 서로 비밀스럽게 숫자를 주고받으면서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주고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모습에 관심을 갖고 제곱, 약수, 함수, 소수 등이 실려 있는 '숫자표'를 찾아서 다시 그 형제들이 있는 병동으로 찾아갑니다.
형제가 숫자로 말하는 대화 속에서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형제들이 주고받았던 것은 6자리 소수였던 것입니다. 형제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을 동원해 소수임을 계산해 낼 수 있었습니다. 둘만이 나누던 숫자 대화는 그들에게는 마치 명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쌍둥이들은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교감하고 평온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무리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이를 '병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시간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독립이 가능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만들기 위해 쌍둥이를 떼어놔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로 인해 쌍둥이들은 떨어지게 됩니다. 서로 다른 시설에 수용된 후 쌍둥이들은 숫자에 대한 신비한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와 함께 삶의 기쁨이나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빼앗기게 됩니다.
쌍둥이 형제를 떼어놓은 사람들은 쌍둥이 형제들이 독립 가능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만들기 위해 신비한 능력의 손실 따위는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사소한 희생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입니다. 이 치료로 인해 형제들은 외출하게 되면 혼자 버스를 타고 어느 정도 사람들 앞에서도 혼자서 처신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단 하나의 뛰어난 재능을 잃어버린 보통 사람 이하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휴가 동안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 출근하게 된 아침은 전과 달랐습니다. 회사를 향해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는데 제가 보지도 않아도 저절로 움직여 주는 제 몸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제 눈에 들어오는 사물 하나하나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간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어떤 형태로든 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 갖고 있어서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경외로움도 미처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인간도 '주체성'을 포기한 인간은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아가는 힘,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개체'다운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의지력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다.